삼성그룹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배정과 관련한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긴장하고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27일 "에버랜드 CB 배정에 관해 2심 재판부가 어떤 판결을 내릴지 그룹 수뇌부의 관심이 온통 쏠려 있다"며 "우리로서는 무죄라고 확신하고 있지만 재판 결과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 사건에 대한 삼성과 검찰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 있는데다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많은 만큼 2심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대법원 상고가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예상했다.

유죄 판결이 나오면 삼성이, 무죄 판결이 나오면 검찰이 상고해 결국 유무죄 여부는 대법원에 가서야 확정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때문에 "이번 항소심에서 유죄가 나오더라도 우리로서는 큰 의미를 두지 않을 것"이라며 무죄 판결이 나오면 크게 환영할 일이지만, 그렇다고 유죄 판결이 나오더라도 그룹이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삼성은 1심에 이어 2심에서 유죄 판결이 나오면 이에 승복하지 않고 대법원에 상고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삼성은 에버랜드 CB 배정이 당시 법규정에 적합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법률적으로 하자가 없고 떳떳하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이처럼 유죄 판결이 나더라도 크게 구애받지 않을 것이라는 표면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에버랜드 CB 배정이 항소심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으면 삼성이 입게 될 상처는 말할 수 없이 크다.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그룹 경영권 승계와 지분 확보의 부도덕성이 거듭 확인되는 것인데다 삼성의 취약한 지배구조가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사회의 압력이 더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에버랜드는 1996년말 CB 99억5천만원어치를 주당 전환가 7천700원에 발행했으며 95년 이 회장으로부터 60억8천만원을 증여받았던 이 전무는 이를 종자돈으로 해 에버랜드 CB를 인수, 주식으로 전환함으로써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된다.

이 전무가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된 뒤 에버랜드는 삼성생명 주식 확보에 들어가 이재용→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현재 삼성의 순환출자 구조가 마련됐다.

이 전무는 당시 거래가격에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저가로 에버랜드의 CB를 편법 배정받았고, 이는 이 전무에게 삼성그룹의 지배권을 확보해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것이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이다.

항소심에서 에버랜드 CB 발행이 유죄로 판결나면 검찰은 이 회장과 그룹 전략기획실(당시 구조조정본부)의 에버랜드 CB 발행 개입여부에 대한 수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검찰은 에버랜드 CB 발행이 유죄로 판결난 뒤에 이 회장과 전략기획실의 개입 여부를 조사하겠다며 그동안 수사를 보류해왔기 때문이다.

삼성은 에버랜드 CB 발행, 'X-파일' 사건으로 삼성에 대한 국민 여론이 악화되자 지난해 '2.7 선언'을 통해 국민에게 사과하는 한편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에버랜드 CB 발행으로 인한 이 전무의 부당이익 취득분 800억원을 포함해 8천억원 상당의 사회공헌 방안을 내놓았었다.

그러나 삼성의 사과와 사회공헌 방안은 국민들로부터 "재벌이 저지른 잘못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냉담한 반응에 직면해야 했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 기업집단 지배구조 개선, 재벌 경영권 승계 등 재계 주요 현안의 중심에 삼성이 있고 에버랜드 CB 배정이 그같은 논란들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대해 법원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이에 대해 삼성과 재계는 어떻게 반응할지 주목거리다.

(서울연합뉴스) 현경숙 기자 k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