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이서우(對手·라이벌) 95%,치루이 10%.'

지난 16일 중국 안후이성 우후(蕪湖)시 치루이(奇瑞)자동차 제2공장.입구 왼쪽에 붙어 있는 날짜별 직하율 현황표 위에 써있는 글귀다.

직하율은 만들어진 차가 불량이 없는 상태로 출하되는 비율.'라이벌은 누굴까' 하는 궁금증은 맞은편 벽에 붙어 있는 또 다른 공정 현황표인 도장불량률 지표를 보는 순간 풀렸다.

'도장 불량률:펑뎬(豊田·도요타)=0.0518%,치루이 20%'라고 쓰여 있었다.

승용차를 생산한 지 7년밖에 안 된 '유치원생 치루이자동차'는 놀랍게도 세계 최고 기업인 일본 도요타를 경쟁 상대로 삼고 '중국의 도요타'가 되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우후시 경제개발구 안 60만5000평의 부지에 들어선 치루이의 승용차공장 세 개 중 하나인 제2공장.한 해 25만대를 만들 수 있는 이곳의 생산라인 위에는 4~5m 간격으로 차들이 줄줄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벽이나 기둥 위에는 '자체 브랜드 없이는 미래가 없다' '자주창신(自主創新) 세계일류' 등의 구호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차량은 마티즈를 본뜬 것으로 유명한 QQ시리즈 소형차 두 종류 등 모두 6가지."우리는 도요타를 숭배한다"(진인보 판매담당 부사장)는 말처럼 도요타의 상징 중 하나인 혼류(混流) 공정을 쓰고 있었다.

혼류 공정은 하나의 라인에서 여러 종류의 차량을 생산하는 시스템.상황 변화에 따라 차종의 생산량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완벽한 부품공급 체계가 확보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첨단 생산공정이다.

사실 치루이자동차는 중국의 자존심으로 굳어지고 있다.

치루이는 외국 기업과 합작하지 않은 말 그대로 토종 기업이다.

지난 3월 상하이폭스바겐 등 외국 합작사를 물리치고 처음으로 중국 시장에서 판매 1위에 올라섰다.

창업 10년,자동차 생산 7년 만의 일이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중국 자주 브랜드의 쾌거"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2004년 이후 중국의 최고 권부인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명 중 6명이 이 공장을 찾았다.

올 가을에는 후진타오 주석도 방문할 예정이다.

18일 안후이성의 성도 허페이에서 열린 안후이성 출신 기업인의 잔치인 후이상(徽商) 국제대회의 전시관에는 치루이자동차가 가장 전면에 배치돼 있었다.

치루이의 발빠른 세계화 프로젝트도 주목받는 이유 중 하나다.

치루이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생산공장을 건설 중이다.

남미 아프리카 등 58개국에 차를 팔고 있으며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손잡고 미국과 유럽 등 자동차 본고장에 대한 진출도 타진하고 있다.

왕진산 안후이성장은 "일본의 도요타,한국의 현대차처럼 중국을 대표하는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치루이에 대한 기대가 현실로 나타나기에는 아직 멀고도 험한 길이 남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치루이는 여전히 '품질 희생을 감수하고 가격을 낮춘다'는 저가 판매 정책을 쓰고 있다.

30만대 이상 팔린 QQ3은 배기량 800㏄ 모델이 3만위안(360만원)대,중형차 Eastar는 1800㏄급이 8만위안(960만원)대에 팔린다.

베이징현대의 엘란트라(伊蘭特·11만위안대)에 비하면 턱없이 싼 수준이다.

기술 수준 역시 아직은 선진국 업체에 한참 못 미친다.

제2공장 한 쪽에 불량 판정을 받은 차량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은 뒤떨어진 기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기술력으로만 보면 지난 80년대 말 스텔라를 만들던 수준"이라는 게 한국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 자동차 설비업체 관계자는 "현대차 등에서 쓰고 있는 혼류 공정이 이곳에선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짝퉁자동차의 이미지는 치루이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다.

오늘날 치루이가 있게 한 것은 대우 마티즈의 복제판인 소형차 QQ다.

대우의 새주인인 GM과의 법정 분쟁이 법원의 중재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급속한 발전의 원동력으로 '베끼기'가 첫손에 꼽힌다.

중국 정부 역시 낮은 이자의 자금을 지원하는 등 치루이 밀어주기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게 정설이다.

낙후한 중국 중부지방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고 있어 이 같은 지원은 더욱 늘어날 게 분명하다.

짝퉁 기업이라는 비아냥 속에 급속한 성장을 한 치루이가 그들의 말대로 '중국의 도요타'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인지 세계 자동차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우후=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