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조 때의 실학자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십육지(林園經濟十六志)'에는 '죽십리(粥十利)'가 있다. 죽이 몸에 좋다는 점을 10가지나 기술했다. 혈색이 좋아지고, 수명이 연장되고, 갈증을 없애주고, 심신을 편안하게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말을 잘하게 하고, 목소리를 맑게 해준다고 한다. 특히 아침에 죽을 먹으면 이롭다고 했다.

죽은 역사가 깊다. 떡이나 밥보다 먼저 발달한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아침 일찍 먹는 초조반(初早飯)으로 죽을 즐겼고, 궁중에서도 아침 주식으로 죽을 먹었다는 사실이 '정리의궤'라는 책에 실려 있기도 하다.

죽이 일찍부터 보편화된 까닭에서인지 '죽은 곧 약'이라는 생각이 깃들어 있고, 어른들에게 지극정성으로 바치는 '효(孝)의 음식'이라는 유교사상이 배어있기도 하다. 양반가나 풍류객들에게는 죽이 별미음식으로 통했는데 죽에 갖가지 보양식을 넣어 먹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죽은 보릿고개를 떠올리게 하는 구황식품이기도 하다. 흉년이 들거나 전쟁이 나면 적은 양의 곡식에 산나물이나 시래기 등을 넣어 여럿이서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미군부대에서 잔반으로 나온 음식을 모아 끓인 꿀꿀이 죽이라든지, 학교급식으로 나온 강냉이 죽을 먹은 세대들에게는 아직도 죽은 슬픈 추억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죽이 이제는 다이어트식이나 보양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재료에 따라 달라지는 천차만별의 맛이 인스턴트족까지 사로잡고 있다고 한다. 또 위장에 부담이 없고, 맛이 담백한데다 여러 반찬없이 간단하게 먹을 수 있어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들의 미각도 유혹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 음식문화에서 죽은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인데도 죽에 대한 속담은 대부분이 부정적이다. '변덕이 죽 끓듯 한다'든지 '죽 쑤어 개 준다'든지 '죽도 밥도 아니다'하는 것들이다.

건강과 미용식으로 재조명되는 죽이 상감으로 대접 받으면서 머지않아 여기에 걸맞은 속담도 나올 성싶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