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俊石 < 한국산업기술재단 이사장 >

생태학자이면서 유명한 논객으로도 알려져 있는 최재천 교수의 최근 저서 중에 '알이 닭을 낳는다'는 재미있는 제목의 책이 있다.

저자의 말인 즉 알 속의 DNA가 면면히 이어져 온 생명의 주인이라는 거다.

그렇다고 해서 '알이 먼저인지 닭이 먼저인지'의 소모적(?) 논쟁이 종식될 것 같지는 않다.

태초에 알이 어떻게 생겼는지 여전히 의문이기 때문이다.

차세대 성장동력의 확보와 첨단기술 인력의 양성을 위해 산학협력이 중요하다는 공감대는 일찍부터 형성돼 왔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산학협력이 획기적으로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산(産)이 문제인지 학(學)이 문제인지'를 따지는 것 역시 '닭과 알'의 논쟁만큼이나 답이 없다.

먼저 학(學)을 보자.매년 우리나라 공과대학의 학사 배출은 인구 1000명당 4.8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1.56명을 크게 상회한다.

그러나 공과대학의 교육경쟁력은 조사대상 61개국 중 54위로 평가되고 있으며,타임지가 선정한 세계 200대 대학 중 우리나라 대학은 겨우 3개뿐이다.

대부분의 공대들이 차별화된 전략없이 특성없는 백화점식 학과 운영을 하고 있으며,산업계의 수요를 반영할 교육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아 급변하는 기술수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산(産)은 어떠한가.

그동안 산업계는 공과대학에 대해 구체적인 수요(Needs)의 제시 없이 대안 없는 비판만 해왔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연구소를 보유한 기업체의 30.6%만이 산학협력에 참여하고 있으며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 중 대학 지원비중도 점차 감소하고 있다.

산업계의 대학에 대한 투자도 건물신축 등 기부 성격이 강하고,현장실습·기자재 지원 같은 인재양성을 위한 투자,산학협력을 위한 투자는 미흡하다.

산학협력이 활성화돼 있는 선진국의 경우도 이런 문제는 있었을 것이다.

다만 오랜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국(自國)의 실정에 맞는 해결방안을 찾았을 뿐이다.

일본의 경우 1983년에 이미 산학공동 연구를 법제화했고,1987년부터 대학 내에 공동연구센터를 운영해 왔다.

독일의 경우 슈타인바이스 재단을 설립해 산·학·연 간의 기술교류 및 기술인력 양성 등 좋은 성과를 내고 있으며,핀란드의 울루지역은 기업형태의 대학을 육성해 라티폴리텍 센터와 같은 산학협력의 모범적 사례를 보여준다.

미국은 대학 정부 연구소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엔지니어2020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중국의 칭화대는 학생들의 기업가 정신을 키우고 사업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칭화대 기업그룹'을 운영,현재 28개 기업이 활동할 정도로 산학협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종래 우리나라의 대학이 특정산업이나 기업 맞춤형으로 인력을 양성하기보다는 범용 인재를 키우는 유형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산학협력이 강조되면서 특정산업 엔지니어 양성형으로 변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와 같은 특정산업이나 L사,S사와 같은 특정기업과의 트랙을 통해 기업 맞춤형 인재를 육성하는 프로그램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서울대 이장무 총장과 포스코 이구택 회장의 한 일간지 지상대담에서 인상 깊었던 대목도 기업이 이제 단순한 인력의 수요자가 아니라 인력을 기르고 배출하는 프로슈머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대학과 기업이 서로 마음을 열고 이해와 신뢰를 바탕으로 공고(鞏固)한 네트워크를 이뤄야 한다.

한국산업기술대학이 2004년도부터 주창한 가족회사가 산학협력의 새로운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산학협력 중심대학 사업을 통해 2004년도에 1300여개였던 가족회사가 지난해에는 6500여개로 늘어났고,산업자원부는 이를 2015년까지 5만여개로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최소단위의 공동체이고,서로 믿고 의지하는 원초적인 관계다.

닭이 먼저든 알이 먼저든 생명의 원천은 따로 있듯이 산학협력에 있어서도 그 생명력은 가족과 같은 신뢰와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이해의 바탕에서 더욱 공고해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