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禮善 < 오픈타이드차이나 대표 >

영국 산업혁명 이후 많은 산업 물자가 생산되고 있던 시기 영국왕 조지 3세는 현격한 영중(英中) 간의 무역수지 개선을 위해 청나라 황제 건륭(乾隆)에게 칙사를 보내 교역 확대를 요청한다.

그러나 청나라의 노회한 80세 황제 건륭은 "우리는 너희들이 만든 이상한 물건에 가치를 둔 적이 없으며 필요가 없다.

너희의 무역 확대 요청은 천조(天朝-중화제국)에 맞지 않다"고 선언하고는 문을 닫는다.

요즘으로 치면 자유무역협정(FTA)을 하자는데 한마디로 우린 필요 없다고 일방적인 파기 선언을 한 셈이다.

당시 은(銀)본위의 세계 경제는 많은 양의 은을 중국으로 모이게 했다.

영국은 처음에는 정상적인 교역을 통해 회수하려 했으나 이를 거절당하자 방법을 바꾼다.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는 아편을 생산하기 좋은 지역이었고,여기서 생산한 아편을 중국에 팔아 중국 전체를 아편 중독으로 만든 후 중국의 은을 다시 영국으로 찾아가기로 한다.

이에 대한 양국 간의 갈등이 결국은 1840년 아편전쟁을 부른다.

우리는 중국 고대사인 수나라 당나라의 역사 및 송(宋),원(元),명(明),청(淸)의 역사는 대부분 잘 알고 있으나 현대 중국인의 사상을 지배하고 있는 최근 70~80년 동안의 역사는 잘 모른다.

과거 반공주의 시절의 교육 탓인지는 몰라도 마오쩌둥(毛澤東)을 포함한 중국 공산당의 역사는 별로 배워본 적이 없다.

중국인들이 어렸을 때부터 너무나 많이 듣고 배웠던 중국 공산당의 역사와 사상을 잘 모르는 게 현대의 중국을 이해하기 힘들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아직까지도 현대 중국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문화대혁명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 성인 남성들의 의식 밑바닥에 "안 되면 되게 하라" "까라면 까!"라는 식의 군대문화가 깔려 있다면,중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문화대혁명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한·중 간의 이(異)문화 이해를 어렵게 하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현상만을 보고 중국을 다 안다고 판단하는 데 있다.

과거 5000년 한·중 역사에서 최근의 수십년 정도만이 우리가 앞서 나간 게 사실이다.

흔히들 한국은 현재의 중국을 보고 우습게 여기고,중국은 과거의 한국을 보고 우습게 여긴다고 한다.

서로가 서로를 우습게 여긴다는 얘기인데,같이 우습게 여겼을 때 누가 손해를 볼지는 뻔한 일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