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한복판에 자리잡은 법무법인 한승.헌법재판관 출신인 김효종 고문변호사의 사무실에는 그가 법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 커다랗게 걸려있다.

연수원 출신 개업 변호사들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고객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법복 입은 사진은 전관들에게 추억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우근 대표변호사는 "구성원끼리는 아직도 '법원장님''검사장님' 하고 부르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가급적 '변호사' 호칭을 쓰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관의 때를 벗기까지 3년은 걸린다"(박영화 변호사)는 설명.

한승의 변호사들은 그러나 "전관예우는 없다"고 단언했다.

예우가 있었다면 가정법원장을 지냈던 송기홍 대표가 가정법원 관할 사건을,대검 마약부장 출신인 곽 대표가 마약 관련 사건을 각각 한 건도 수임하지 못했겠냐는 반문이다.

형사사건을 수임하면 주임검사를 직접 방문한다는 곽 대표는 "검찰 선배가 왔다고 예의를 갖출 수는 있지만 사건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게 검사냐"고 목청을 높였고 이 대표도 "전관이 변호사로 나섰다고 해서 소송의 승패가 달라질 정도로 대한민국 판사들의 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고 강조했다.

전관 출신이 승소율이 높은 것에 대해 이 대표는 "소송을 다뤄본 경험이 풍부하기에 잘 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능성이 낮은 사건은 수임하지 않는다"(박 변호사)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법률포털인 '로마켓'에 따르면 한승의 형사사건 수임건수는 상위 10% 내외.변호사 35명인 로펌치고는 높은 편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형사사건을 '싹쓸이'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이 대표는 "시장원리가 작동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임정수 변호사는 "의뢰인들도 유능한 변호사를 구하다보니 육감적으로 현직에서 갓 나온 분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관예우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사소송에서 전관 변호사들이 맡은 사건에서 '조정'이 많은 것도 그 증거라고 얘기한다.

전관 변호사가 맡은 쪽이 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재판장이 조정을 유도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박 변호사는 "재판부의 고충을 잘 알기 때문에 법원이 조정을 원하면 따라가게 되고 의뢰인을 설득하게 된다"며 "어떻게 보면 전관예우가 아니라 전관 푸대접"이라고 반박했다.

한승은 올해도 4명의 전직 판·검사를 영입했다.

"의학에서도 새로운 수술법이 도입되듯 소송시스템도 계속 바뀌기 때문에 현직들을 영입해 따라가야 한다"(박 변호사)는 이유에서다.

물론 전관 변호사들은 법원과 검찰이 약간의 '편의'를 봐준다는 점은 인정했다.

박 변호사는 "금방 합의가 될 것 같으면 빨리 처리해달라고 부탁하는 정도"라며 "그 때문에 누가 피해를 보거나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곽 대표도 "피의자인 의뢰인의 구속기소 여부와 관련해 결재권자까지 만난다"고 밝혔다.

"공명정대하게 처리해달라"고 말하는 수준이라지만 일반 변호사들이 주임검사 윗선을 만나기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특혜일 수는 있다.

"전관이든 아니든 판사들의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다"(임 변호사)고 말하지만 연수원 출신 일반 변호사들은 "그런 편의가 모이고 모여서 결국 승소로 이어진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 대표는 전관예우 논란은 영화 '매트릭스' 같다는 이색적인 주장을 폈다.

현실보다 더 현실감 나는 가상세계,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사회 현상과 같다는 것.

이 대표는 "일반인의 판사실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법원 출입문에 슬라이드 도어를 설치하고 판사들이 변호사들과 전화를 금지토록 한 것은 전관예우 차단 의지를 국민들이 믿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언론의 책임론도 제기됐다.

"과거에 오해를 살만한 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 대표)이지만 실체와 달리 언론이 부풀렸다는 지적이다.

언론이 검찰의 발표를 보도하는 형식으로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 또한 제기됐다.

임 변호사는 "언론이 중간수사결과 발표 등으로 여론재판 하기보다는 재판과정을 철저히 지켜보고 판결이 제대로 나왔는지 감시한다면 전관예우 논란도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


이국운 한동대 법학부 교수는 전관예우 논란에 대해 "한마디로 인질극"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전관예우는 국민을 상대로 불법 속에서 합법을 파는 장사"라고 지적했다.

불구속 수사의 원칙을 제시한 헌법 및 형사소송법과 달리 인신구속이 관행화 되어 있고,전관출신 변호사들이 나서야 아량을 베풀듯 재판부가 피의자를 석방하는 현실이 전관예우를 양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당연히 풀어줘야 할 사람을 가둔 뒤 '원칙대로 해달라'는 변호서비스를 제공해야만 내보내 주는 것은 국민들을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관예우를 입증할 수 없다는 지적에 대해 이 교수는 "언젠가 퇴직 후 변호사가 되려고 하는 판·검사는 법률가집단 전체의 공적(公敵)이 되면서까지 전관예우를 폭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예비 변호사처럼 행동하는 판·검사와 '재야 판·검사'라고 생각하는 변호사의 역할 맞바꾸기가 전관예우를 고착시키는 법조 카르텔의 진상"이라고 지적했다.

전관 변호사에게 재판부가 편의를 봐주기는 하지만 승패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편의가 쌓여 불법으로 이어지는 것으로,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고 맞섰다.

이 교수는 전관예우 논란을 없애기 위해 두 가지 해결책을 제시했다.

피의자를 구속하고 보는 잘못된 관행을 바꾸고, 재판장급 이상 판사들이 변호사로 개업하지 않고 정년을 지키도록 유도하자는 제안이다.

이와 관련,이 교수는 판·검사로 임용되지 못하고 사법연수원 수료 후 바로 개업하는 이른바 '개업변호사'가 매년 500명 이상 배출되는 데 주목하고 있다.

그는 "이 수준을 유지하면 판사들이 변호사 개업보다는 평생 판사로 머물러 있으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