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플(TOFEL)은 국제화 시대의 '여권'입니다. 세계 무대로 진출하고픈 인재들에겐 필수품이죠."

지난 21일 오전 최근 10일간의 '토플대란'을 잠재우기 위해 긴급 기자회견을 마련한 폴 램지 미국 교육평가원(ETS) 수석부사장은 자신감을 드러냈다. 방한 전날 국내 외고들이 내년 입시 전형에서 토플을 배제키로 한 점을 아느냐는 질문을 받고서다. 그는 "(중·고교생) 고객을 빼앗겨 좋지는 않지만 영어는 글로벌 시대의 필수품인 만큼 토플 수요가 줄어들진 않을 것"이라며 크게 괘념치 않았다.

겉으로는 이번 토플 대란에 대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였지만 그의 속내는 달랐다. 그는 "한국도 일본·중국처럼 토종 영어시험을 개발하라"고 충고했다. 필요하다면 ETS 측에서 컨설팅 자문을 하겠다고 나서기까지 했다.

램지 부사장은 "토플 접수를 위해 계속 클릭하는 '광클'이란 말을 이번 토플대란을 통해 처음 들었다"며 "한국에 토플 수요가 이렇게까지 많은 줄 몰랐다"고 했다. 결국 토플에 맞먹는 토종 영어 시험이 없는 상황에서,외고 입시 열풍까지 겹치면서 토플 수요가 크게 늘어나 이번 사태가 발생했다는 진단이다. 썩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근거있는 분석이고 뼈아픈 충고였다.

한국의 영어교육 열풍은 매우 뜨겁다. 이 같은 열기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정부는 일본과 중국처럼 해외에서 인정받는 토종영어시험 개발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 일본은 1963년 개발한 실용영어 기능검정(STEP TEST)을 미국 대학이 인정토록 힘써 현재 상당수의 미국 대학이 STEP점수를 인정하고 있다. 1987년 ETS의 자문으로 중국이 개발한 전국대학영어고시(CET) 역시 국내외에서 공신력 있는 영어시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결국 ETS의 무성의에 정부 당국의 무대책이 함께 어우러져 소비자인 응시생들만 골탕을 먹고 있는 셈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유학을 위한 토플시험 이외 국내용 영어 시험은 자체 해결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외고의 입시정책에 왈가왈부하는 일 외 교육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정부 주요 업무 중 하나다.

성선화 사회부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