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로 의약품 분야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관측에 갈수록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도 피해 분야라며 대책마련을 지시했을 정도다.

하지만 피해 규모를 두고서는 정부와 보건의료시민단체 등 각자의 입장에 따라 엄청나게 차이가 난다.

보건의료시민단체는 특허와 허가의 연계, 자료독점권 인정 등 특허보호 강화로 1년에 1조원 씩, 5년간 최대 5조원 가량의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보건의료시민단체가 협상의 구체적 타결내용을 감안하지 않고 피해 추계액을 터무니 없이 부풀렸다며, 협상과정에서 우리 측 입장이 상당부분 반영된 만큼 많아야 5천억원 정도의 피해를 입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국내 제약산업의 기대 매출 감소 등 단기적인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장기적으로 체질을 강화하는 계기가 돼 산업 선진화를 가져오는 등 국내 제약기업의 피해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정부는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국민들의 시각에서 볼때는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의약품의 생산과 유통, 소비 과정이 워낙 복잡해 구체적으로 피해가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모르는 데다, 당장 피부에 와닿지도 않아서인지,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문제인 양 별다른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국민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의료비가 대폭 늘어날 것이라는 것 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한미FTA 의약품 협상타결로 외국 신약과 약효는 같으면서 값은 훨씬 싼 복제약이나 유사의약품(개량신약)의 출시가 늦춰지면서, 지연되는 기간만큼 환자들은 비싼 외국 신약을 사용할 수 밖에 없는 탓이다.

◇미국 의약산업협회 `대환영' VS 한국 제약협회 `울상' = 우리나라 소비자 입장에서 한미FTA 의약품 협상이 한국 측에 유리하게 됐는지 그 결과를 평가하고 판단하는데 도움을 되는 게 미국과 한국 두 나라 제약사들의 표정이다.

한미FTA 협상결과를 두고 미국 내에서도 분야별로 반응이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 업계나 쇠고기 생산업계 쪽에서는 협상결과에 썩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심지어 `재협상 가능성'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두 손을 들고 가장 열렬하게 환영하는 곳이 있다.

바로 미국 제약산업쪽이다.

미국 다국적 제약협회는 협상이 타결되자 마자 지난 3일 홈페이지를 통해 환영 성명을 내놓았다.

미국계 제약사 `혁신적 신약'의 접근권을 보장받은 것을 환영하며 미국과 한국 양국 정부는 협정이 잘 이행되도록 점검하면서, 한국의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대해서도 양국이 설치키로 합의한 독립적 이의신청 기구나 의약품/의료기기 위원회를 통해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협상결과에 크게 만족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반면 국내 제약사들은 실망을 금하지 못하고 있다.

그 만큼 손실이 클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에서다.

한국제약협회는 "이번 협상에서 허가와 특허를 연계시키고, 유사의약품의 자료독점권을 인정하는 등 지적재산권을 과도하게 보호해 주는 결과를 낳아 국내 제약기업은 제네릭의약품이나 개량신약을 개발할 수 있는 통로가 막히는 암울한 상황에 놓였다"고 울상을 지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미국계 다국적 제약사들은 이번 협상으로 우리나라에서 기존 특허기간보다 5년 정도 늘어나는 특허보호 혜택을 누리면서 여기에서 나오는 `과실'을 자국으로 가져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지만, 국내 제약업계는 신약개발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를 잃게 됐다고 탄식하고 있다.

◇약값을 얼마나 더 지출해야 하나 = 국내 제약업계 등 `생산자' 입장에서 한미FTA 의약품 협상결과를 분석한 주장들만이 주로 바깥으로 흘러나오다 보니, 소비자 입장, 다시 말해 국민 개개인의 처지에서 과연 얼마 만큼의 피해 내지 손해를 보게 되는 지 짐작 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환자는 과연 얼마의 약값을 더 떠안아야 할까.

개량신약 발매로 큰 성공을 거둔 한미약품이 지난 2006년 7월 중순 자체 자료 분석을 통해 내놓은 통계자료를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이 회사는 2001년부터 2006년 5월까지 순수 자사 개발 의약품 89개 품목으로 약 1천629억원의 건강보험 약제비를 절감하는 효과를 거두었다고 주장했다.

건강보험 재정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는 자랑인 셈이다.

그 만큼 국민건강에 도움을 주면서 국민의 약값 부담도 덜어주었다는 것이다.

회사 측의 셈법은 다음과 같다.

혈압 강하제 아모디핀을 중심으로 트리악손, 심바스트, 라메졸, 그리메피드, 세포탁심, 뮤코라제 등 의약분업 후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한 개량 신약들이 외국의 오리지널 의약품을 대신해 보다 싼 값에 환자들에게 대체 처방, 조제되면서 결과적으로 건강보험 약제비를 절감했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특히 아모디핀의 경우 미국계 다국적 제약사 화이자의 오리지널 의약품 `노바스크'의 주요성분 특허가 2004년 만료되는 시점에 맞춰 화학 구조나 제제, 제형을 약간 변형시켜 만든 개량신약으로 국내 개발 의약품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실제로 이 약은 2004년 9월 첫 선을 보이자 마자 국내 고혈압 치료제 시장의 지각을 뒤흔들어 놓을 만큼 돌풍을 일으켰다.

이 약은 발매 4개월 만에 100억원의 매출을 올리더니, 2005년 한 해 동안 무려 4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약은 건강보험 약제비 청구액 상위 100대 의약품 중에서도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던 노바스크의 아성을 허물었다.

아모디핀의 등장으로 노바스크의 건강보험 약제비 청구액은 2004년 1천316억원에서 2005년 1천68억원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아모디핀이 노바스크의 시장을 빼앗은 셈이다.

회사 관계자는 "아모디핀의 약값은 1정당 396원으로 노바스크의 75%에 그쳐 건강보험 약제비 절감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미FTA 의약품 협상결과로 앞으로는 아모디핀 같은 성공 신화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는 게 제약업계의 판단이다.

지적재산권 강화 때문이다.

특허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물질 특허, 용법 특허, 제법 특허, 조성물 특허, 적응증 특허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각 특허들이 끝나는 시점도 제각각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정책실장은 "특허-허가 연계로 의약품 당국은 국내 제약사가 외국 신약을 베낀 복제약이나 유사한 개량신약의 허가신청서를 접수하면 이를 다국적 제약사에 통보토록 돼 있고 또 다국적 제약사가 자사의 신약의 각종 특허를 침해했다고 소송을 제기하면 즉시 허가절차를 중단토록 돼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제네릭 의약품이나 개량신약은 언제 나올지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발매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되면 그 만큼 소비자들은 비싼 신약에 오랫동안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되고 결과적으로 약값 부담을 더 짊어질 수 밖에 없게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통해 5년 간 5조7천억원 가량의 건강보험 약제비를 줄이겠다고 했는데, 신약 특허강화로 인한 복제약과 개량신약의 출시 지연과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독립적 이의신청 기구 설립 등으로 1년에 1조원 정도의 추가 약값 부담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그는 말했다.

피해 추계액은 물론 국민이 부담해야 할 몫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sh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