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한 `부담 벗은' 윈.윈 게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14일 4년 연임제를 골자로 한 원포인트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던 뜻을 마침내 거둬들였다.

한나라당이 의원총회에서 "18대 국회와 차기 정부에서 개헌을 완료토록 노력하고 이를 대선공약으로 제시한다"는 개헌 당론을 추인한 것이 결정적 이유였다.

노 대통령은 "각 당이 18대 국회 개헌을 당론으로 정해준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했고,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한나라당의 당론 속에 4년 연임제라는 표현이 들어갔고, 이 정도는 책임있는 대국민 약속으로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청와대가 한나라당에 제시했던 개헌발의 유보의 조건이 형식과 내용 면에서 모두 충족됐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특히 한나라당이 차기 국회에서의 4년 연임제 논의를 개헌공약에 포함시킨 데 만족감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한나라당은 권력구조 개편문제에 대해 "4년 연임제를 비롯해 모든 내용을 논의한다"며 원포인트 개헌으로 제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문구 자체가 앞으로 대선과 개헌추진 과정에서 구속력을 갖게될 것이란 게 청와대의 자체적인 판단인 것이다.

이로 인해 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임기내 개헌을 공약으로 제시한 데 대한 정치적 부담을 덜게 됐다는 것이다.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 입장에선 약속어음 형태로나마 대선공약을 이행한 것이며, 한나라당은 그 어음에 배서를 한 것"이라며 "앞으로 각 정당의 경선 출마자나 대선후보들이 개헌문제를 주효한 선거공약으로 내걸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결과적으로 노 대통령 입장에선 한나라당에 제시한 요구조건을 사실상 관철함으로써 개헌안 철회의 명분을 얻었고, 한나라당 역시 `개헌정국'의 파고를 피해 가게된 윈윈 게임으로 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이 헌정사상 최초로 각 정파와 개헌을 담보하는 정치적 틀을 만들어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다.

개헌안 철회에 대한 정치적 타격을 상쇄하는 한편 대선정국에서 각 당과 후보들에 대한 지렛대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노 대통령의 이번 결정을 개헌철회가 아닌 '18대 국회 개헌추진 합의 수용'이라고 하는 데서 이런 기대감이 느껴진다.

한 핵심참모는 "우리나라 개헌 역사에서 처음으로 각 정파와 대통령이 개헌에 합의했다는 데 정치사적 의미가 있다"며 "정치발전에 한 이정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치적 판단 외에도 한나라당이 당론 추인 과정에서 보여준 유연성이 노 대통령의 결단을 앞당긴 배경이 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나라당의 의총결과가 나왔을 때만 해도 청와대 참모들조차 "16일까지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으나, 이런 예상이 완전히 빗나간 셈이다.

한 핵심 참모는 "당론 추인으로 한나라당이 할 수 있는 성의표시는 다 한 것으로 본다"며 "진정성을 느껴지게 하는 정치적 태도"라고 평가했다.

현실정치적 차원에서 열린우리당이 개헌안 발의를 내켜하지 않는 상황이 노 대통령의 최종 판단에 작용했을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우리당은 전날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6자 원내대표 합의를 추인하는 한편 물밑에선 정치적 파국을 막기 위해 한나라당과 청와대 사이를 오가며 막후 중재 노력을 편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이 개헌 당론을 재확인하자, 우리당은 이를 환영하며 청와대와 다른 스탠스를 취했고, 우리당의 이런 움직임이 '개헌발의는 안된다'는 무언의 압력으로 청와대에 전달되면서 "18대 국회 개헌을 국민에게 약속한 각 당의 합의를 수용한다"는 대통령의 메시지로 나온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등 임기말 경제와 민생문제에 전념해달라는 여론이 정치권의 반대 등 현실의 벽에 부닥친 개헌 의지를 접도록 한 요인이 됐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청와대측은 "개헌문제는 한.미 FTA와 전혀 관련이 없다"며 이른바 '맞바꾸기' 의혹을 일축했으나, 노 대통령으로서는 한.미 FTA 말고도 부동산, 교육, 로스쿨 등 국회의 도움 없이는 처리할 수 없는 국정과제가 산적해 있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즉 개헌문제에 매달려 정치적 논란을 지속하는 것보다는 국민적 지지와 정책 추진력을 끌어낼 수 있는 미래과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이 임기말 효율적인 국정운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데 판단이 모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개헌문제의 경우 대통령 본인으로선 대선공약을 이행하는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전제한 뒤 "이제 FTA 보완대책을 비롯해 교육 3불정책과 부동산문제 등 민생현안을 마무리하는데 역점을 둘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