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섭 < 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

4월이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 4월이면 생각나는 사람도 있다.

"우리 한 달만 헤어져 보자"고 했던 그때 그 사람.헤어짐에 유효기간을 두고 소멸되어가는 사랑을 지켜볼 수 있는 쪽은,언제나 덜 사랑하는 사람 쪽이다.

나는 그 한 달이 지난 후에도,더 이상 그를 만날 수 없었다.

혹은 그를 지켜 볼 수 없었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는 특이하게도 유지태와 이영애,상우와 은수 두 사람의 연애가 시작되자 스크린 한 가득,대숲소리,잔물소리,인경소리가 가득했다.

그러나 사랑이 몰려 나갈 때는 빗소리,파도소리를 택한다.

우르르 몰려왔다 물러나는 소리의 부서짐.

상우와 은수는 꽃이 만발한 어느날 교외로 데이트를 나가서,겨울의 눈속에서도 되살아나는 대숲과 봄날의 햇살에서도 파릇한 무덤 앞에서 사랑을 맹세한다.

은수는 상우에게 물어본다.

"우리도 죽으면 저렇게 같이 묻힐까?" 무덤가에서 새소리가 나고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그런데 두 계절이 채 가기도 전에 여자는 남자에게 "우리 헤어지자"고 말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는 그렇게 공간의 여백으로 만남을 이야기하고 시간의 공기로 빈자리를 채우며,계절로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란 명 대사를 남긴 영화는 봄날이면 내게 다시 찾아와,사랑보다는 사랑의 자세에 관해 생각하게 만든다.

봄이다.

봄이 왔다.

봄에는 이상하게도 마음 갈피갈피 묻어둔 빛바랜 기억의 음표들이 공기 중에서 새싹들과 함께 다시 싹트는 것도 같다.

너무 아름다워서 더 잔인한 4월에는 더욱 새로운 관계에 대한 욕망이 목구멍을 간지럽힌다.

어쩌면 5월보다는 덜 찬란하지만,쉬이 꽃들이 피고 지는 4월의 자태가 사랑의 어떤 모습과 유독 닮아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4월의 소리는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바람이 낮고,새싹들은 큰 나무가 되고 싶어하지만 아직은 그럴 수 없는 슬픔의 물기를 함께 머금는다.

모든 매체가 코를 박고 FTA란 황금저울에 경제라는 삶의 무게를 달아보지만,이젠 정말 일상을 떠나자.눈을 들어 창밖을 보자.봄이 왔다.

황사도 감히 죽일 수 없는 해빙의 계절이 돌아왔다.

그러니 요번 주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대도시를 떠나겠다.

가족들과 함께,이제는'내 생애 단 하루뿐인 특별한 날'대신 '예쁠 것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은'사랑을 하고 싶다.

그렇게 천천히 나의 심장박동과 사랑하는 이의 숨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다면,이 짧은 봄날은 그 자체로 충분히 눈부시지 않겠는가.

4월. 지금 이 순간,봄날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