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샌드위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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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 증후군'은 현대 조직사회의 스트레스성 질환이다. 젊고 유능한 부하 직원들이 아래서 치받고,위에서는 성과를 다그치는 틈바구니에 놓인 중간 관리계층의 직업병을 말한다. 시름시름 속앓이를 하다가 증상이 심해지면 갑자기 주저앉으면서 심한 우울증에 빠지는 탈진증후군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이 샌드위치 증후군을 놓고 요즘 말이 많다. 우리 경제가 미국 일본 등에 기술경쟁에서 밀리고,중국에 비해선 가격경쟁에서 뒤처짐으로써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중병(重病)에 걸려 있다는 얘기다. 재계 총수들이 잇따라 위기를 경고하고 나서자 청와대와 정부가 '부자 몸조심'이 지나쳐 쓸데없는 호들갑을 떤다고 윽박지르는 희한한 일마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샌드위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지적은 새삼스런 것도 아니다. 외환위기 당시 이미 '넛크래커에 끼인 호두 신세'로 설명됐다. 강대국의 틈새 한가운데 있는 한반도의 주변 여건부터 그렇고,이를 극복하기 위해 산업화에 매진했고 성공도 거두었지만 내세울 만한 독립적 독보적 영역을 갖지 못한 현실,그것이 결국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본의 논객 오마에 겐이치는 우리 경제구조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데 따른 숙명(宿命)과 같은 것이라고 했었다. 그동안 '일본 따라하기'에 바빴던 한국이 만드는 제품 거의 모두가 일본과 겹쳐 해외시장에서 부딪치는데,자원과 기술의 빈곤으로 '한국이 아니면 구할 수 없는' 상품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환율조건이 조금만 바뀌어도 나라경제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허약하다는 비아냥이기도 하다.
독설(毒說)도 마다않는 그이지만 딱히 반박할 말을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와 같은 과정을 밟고 있는 중국이 치고 올라오는 것은 시간문제고,그래서 우리의 경제위기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지금 나라를 먹여 살리는 반도체·휴대폰·자동차·조선·철강이 앞으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언제 중국에 추월당할지 불안한데 그 다음이 보이지 않으니 항상 고민일 수밖에 없다. 그게 경제위기론의 본질인 것이다.
이런 숙명적 딜레마를 헤쳐나가는 길이 없는 건 아니다. 중국이 만들지 못하는 제품을 일본이 제시할 수 없는 가격으로 내놓는 '역(逆) 샌드위치 전략'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초고속 정보통신망이 한국을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국가로 이끌고,'반도체 삼성'이 세계의 기술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기존 상황을 파괴하는 새로운 사업으로 시장을 창출하는 '파괴적 혁신'이 해법이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도 같은 맥락의 위기극복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미국시장에서 지난 20년간 점유율이 3%대 턱을 넘지 못하고 현상유지조차 힘든 구조를 바꾸기 위한 새로운 차원의 시장접근인 것이다.
이 정권에서 여당 의장·장관자리를 지냈던 사람들이 지금 국회에서 멍석 깔고 반(反)FTA 단식투쟁을 벌이는 모습은 그래서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국론 분열을 부추겨 한쪽 편에 편승함으로써 정치생명이나 연장해보자는 뜻임을 누가 모르겠는가. 샌드위치 증후군을 내버려 두면 결국 온 몸의 힘이 빠져 옴짝달싹 못하는 탈진(burnout)에 이르고,그때는 정말 손 쓸 방법이 없다.
추창근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
이 샌드위치 증후군을 놓고 요즘 말이 많다. 우리 경제가 미국 일본 등에 기술경쟁에서 밀리고,중국에 비해선 가격경쟁에서 뒤처짐으로써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중병(重病)에 걸려 있다는 얘기다. 재계 총수들이 잇따라 위기를 경고하고 나서자 청와대와 정부가 '부자 몸조심'이 지나쳐 쓸데없는 호들갑을 떤다고 윽박지르는 희한한 일마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샌드위치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지적은 새삼스런 것도 아니다. 외환위기 당시 이미 '넛크래커에 끼인 호두 신세'로 설명됐다. 강대국의 틈새 한가운데 있는 한반도의 주변 여건부터 그렇고,이를 극복하기 위해 산업화에 매진했고 성공도 거두었지만 내세울 만한 독립적 독보적 영역을 갖지 못한 현실,그것이 결국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본의 논객 오마에 겐이치는 우리 경제구조가 경쟁력을 잃을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데 따른 숙명(宿命)과 같은 것이라고 했었다. 그동안 '일본 따라하기'에 바빴던 한국이 만드는 제품 거의 모두가 일본과 겹쳐 해외시장에서 부딪치는데,자원과 기술의 빈곤으로 '한국이 아니면 구할 수 없는' 상품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환율조건이 조금만 바뀌어도 나라경제 전체가 들썩일 정도로 허약하다는 비아냥이기도 하다.
독설(毒說)도 마다않는 그이지만 딱히 반박할 말을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와 같은 과정을 밟고 있는 중국이 치고 올라오는 것은 시간문제고,그래서 우리의 경제위기는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지금 나라를 먹여 살리는 반도체·휴대폰·자동차·조선·철강이 앞으로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언제 중국에 추월당할지 불안한데 그 다음이 보이지 않으니 항상 고민일 수밖에 없다. 그게 경제위기론의 본질인 것이다.
이런 숙명적 딜레마를 헤쳐나가는 길이 없는 건 아니다. 중국이 만들지 못하는 제품을 일본이 제시할 수 없는 가격으로 내놓는 '역(逆) 샌드위치 전략'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초고속 정보통신망이 한국을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국가로 이끌고,'반도체 삼성'이 세계의 기술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기존 상황을 파괴하는 새로운 사업으로 시장을 창출하는 '파괴적 혁신'이 해법이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도 같은 맥락의 위기극복 전략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미국시장에서 지난 20년간 점유율이 3%대 턱을 넘지 못하고 현상유지조차 힘든 구조를 바꾸기 위한 새로운 차원의 시장접근인 것이다.
이 정권에서 여당 의장·장관자리를 지냈던 사람들이 지금 국회에서 멍석 깔고 반(反)FTA 단식투쟁을 벌이는 모습은 그래서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국론 분열을 부추겨 한쪽 편에 편승함으로써 정치생명이나 연장해보자는 뜻임을 누가 모르겠는가. 샌드위치 증후군을 내버려 두면 결국 온 몸의 힘이 빠져 옴짝달싹 못하는 탈진(burnout)에 이르고,그때는 정말 손 쓸 방법이 없다.
추창근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