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섭 < 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

봄 내음이 스멀스멀 아스팔트 아래서 기지개를 켜는 설 연휴,아이들을 데리고 르네 마그리트 전시회에 다녀왔다.

개인적으로 초등학교 입학 무렵 아버지의 손을 잡고 덕수궁 화랑에서 보았던 '밀레의 만종'이 너무 인상적이었던지라,나도 아이들에게 비슷한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던 터였다.

그러나 아이들은 르네 마그리트 그림 앞에서 "무슨 컵이 저렇게 커?" "구름 무늬 비둘기도 세상에 있어?"라는 엉뚱한 질문만 해댄다.

마침 전시회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이 다가와 6살짜리 우리 딸에게 껌을 뱉어야 한다고 난처한 얼굴로 계속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자꾸자꾸 껌을 뱉으라고 아이에게 눈치를 주면서,엉겁결에 "이것은 껌이 아니에요"라고 말해 버렸다.

(르네 마그리트의 가장 유명한 작품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제목이 있다) 영문도 모르는 딸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계속 껌을 씹고,직원은 피식 웃는다.

아무리 달래고 얼러도 말을 듣지 않았는데 "사탕 줄게"라고 하니 얼른 껌을 뱉는다.

카페에서 아이들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며,의문이 든다.

'내 아이들이,대한민국 아이들이 르네 마그리트 같은 도발적인 상상력을 가졌으면 하고 바라지만,우리 가족이 혹은 우리 사회가 과연 제2, 제3의 르네 마그리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교육과 문화를 지녔는가' 하는.

평상시 그의 그림을 보며 근엄한 철학자를 떠올렸던 나는,어린아이처럼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흑백 영화 속의 마그리트를 보며 일견 피카소와 참 닮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놀랍게도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속에는 오늘날 내가 가르치고 있는 창의력의 비의-이미지의 확대,전치(轉置),융합,이종결합 같은 요소들이 모두 들어있다.

그래서 상상해 보았다.

온통 사방이 논술,논술 하고 논리력을 키워야 한다고 하지만,어디 '기발한 답 토해 내기 같은 창의력 재는 대학시험은 없나' 하는 생각.

어찌되었든 이것은 여전히 껌이 아니었다.

그곳은 시립 미술관도 아니었다.

통째로 꿈의 상자,의문표의 통조림,불온한 상상력에 몸을 맡긴 어느 쌀쌀한 봄 오후는 그랬다.

르네 마그리트에게 배우기.그것은 모순과 역설의 세계에 발을 담그는 여행이다.

그날 오후 나는 꿈 샤워를 실컷 했다.

르네 마그리트라는 기호(記號)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한 창조적인 영혼 덕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