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이라크 시아파 정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이라크 이슬람혁명위원회(SCIRI) 압델 아지즈 알-하킴 의장의 장남을 12시간이나 구금한 것은 `이란과 내통하면 예외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풀이된다.

알-하킴의 장남임을 몰랐을 리 없는 미군은 이번 구금에 대해 "(알-하킴의 아들인) 암마르 알-하킴 일행이 추가 조사를 요하는 특정 기준에 저촉됐다"고 밝혔다.

미군의 이런 발표와 암마르 알-하킴이 이란에서 귀국하는 길에 미군에 구금당한 것을 감안할 때 미군이 던지려 한 경고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미군의 이번 전격적인 `구금사건'은 알-하킴 의장의 미묘한 정치적 배경과 얽혀있다.

이라크 시아파의 최대 정파를 이끄는 그는 그간 친미적인 태도를 취하며 미국에 적극 협조해왔다.

하지만 알-하킴 의장은 사담 후세인 정권하에서 이란에 장기간 망명생활을 하면서 이란의 지원을 받아 SCIRI와 군사조직인 바드르 여단을 조직했을 만큼 이란과 내밀한 관계다.

미군이 지난달 아르빌의 이란 연락사무소를 급습하자 그가 이례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도 이런 이란과 뗄 수없는 인연 때문이다.

이라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미국으로선 그의 이런 `양면성'이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란을 이라크의 테러 지원세력으로 몰아 부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라크와 단절시키고 핵문제를 걸어 이란의 입지를 좁게 하려는 게 미국의 변함없는 중동정책이다.

따라서 이번 알-하킴 의장의 장남을 전격 체포함으로써 미국은 알-하킴 세력에 `이제는 과거의 인연에 얽매이지 말라'는 사뭇 긴장이 감도는 신호를 준 셈이다.

그러나 암마르 알-하킴이 구금에서 풀려난 뒤 미군이 수갑을 채우고 눈을 가리는 폭력적인 대우를 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려던 미군이 말 그대로 `오버액션'을 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가 구금된 사실이 알려지자 이라크 곳곳에서 시아파 주민이 대규모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이라크 주요 인사를 미군이 범죄인 취급한 데 대해 심한 모욕감을 느끼면서 미국이 얼마나 이라크를 얕잡아 보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여기고 있다.

잘마이 칼릴자드 주이라크 미 대사가 즉시 "이번 체포에 대해 사과한다"며 저자세를 취한 것도 이런 역효과를 의식한 것이다.

미국이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할 만큼 이란의 영향력 확대에 극도로 민감해지다 보니 이번과 같은 `실책'을 한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이라크 주요인사를 강경하게 눌러보려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

미국은 2004년 반미 강경 시아파 정치ㆍ종교 지도자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이끄는 무장세력인 마흐디민병대가 테러를 주도하고 있다며 일전을 벌였지만 이를 견뎌내자 알-사드르가 오히려 시아파의 `영웅'으로 떠올랐고 반미감정만 깊어졌었다.

(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hska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