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일 < 문학평론가 >

미국의 배럭 오바마 상원의원은 힐러리 클린턴과 함께 민주당 차기 대선(大選) 후보 지명전에 나선 사람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인물에 대해 은근히 관심이 많다.

마흔다섯의 젊은 나이,흑인,아내와 두 딸을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법대 강사에 공동체 운동의 전력(前歷)을 가진 초선 의원….오바마에 관한 이런 신상 정보들은 흥미로운 데가 있다.

명성도 자자하다.

그가 힐러리를 제치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될 수 있을까. 후보가 된다 해도 미국 유권자들이 흑인 대통령을 갖고 싶어 할까? 이런 미지의 전망도 흥미를 자극한다.

지금은 우리도 대선 정국이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대선 판도를 슬금슬금 비교해가며 관전하는 재미도 상당하다.

그러나 내가 오바마에 주목하는 까닭은 꼭 이런 사정들 때문만은 아니다.

반드시 그를 지지해서도 아니고(지지한다 해도 한국인인 내가 그에게 표 하나 보태줄 방법은 없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도 아니다.

나의 관심을 끈 것은 그가 작년에 낸 '대담한 용기'라는 책이다.

대선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이지만 몇 장만 읽어봐도 정치인들이 흔히 졸속(拙速)으로,그것도 남의 손을 빌려서 써내는 허황한 홍보성 책들과는 격조가 다르다.

솔직하고 겸손하고 진지하다.

설득력(說得力)이 있고 글 솜씨가 탁월하다.

이만한 글쓰기의 능력이라면 토머스 제퍼슨이나 링컨에 견줄 만하다.

이 젊은 정치인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이런 능력을 키운 것인지 참 궁금하다.

무엇보다도 돋보이는 것은 미국 사회의 문제들을 깊이 파악하고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그의 능력이다.

이런 능력은 쉽게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갈등 투성이의 문제들을 몸으로 파악하고 고민과 숙고(熟考)를 거쳐 구체적 해결책을 생각해본 사람에게서만 나옴직한 어떤 능력 수준을 이 젊은 정치인은 갖고 있다.

세계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보려는 열정,정쟁(政爭)을 넘어서서 문제를 풀기 위한 사회적 에너지를 모으는 것이 정치라는 생각,미국이 가진 최선의 전통과 가치에 대한 긍지,이런 것도 그를 주목하게 하는 장점들이다.

내가 그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런 것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서 '희망'을 발견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지금 우리의 정치판과 견주어보면 미국 정계에 이만한 인재가 있다는 사실부터가 부럽다.

찾아보면 우리에게도 이런 인물은 있을 법한데….

인터넷 서점 아마존을 뒤지다 보니 그의 인터뷰 꼭지 하나가 눈에 띈다.

"당신은 아동 교육을 위한 어른들의 책임(責任)을 자주 얘기하는데,미국의 교육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부모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은 무엇인가? 작지만 큰 결과를 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오바마의 답변은 이렇다.

"아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어주는 것 이상으로 큰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일이 없다.

우리 모두는 텔레비전을 끄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개인적 의무를 지고 있다.

책을 잘 읽지 못하는 어른들에게는 읽기의 능력을 길러주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도록 하는 것,이런 것이 아이들의 삶을 크게 바꿔 놓을 수 있다." 작지만 중요한 일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의 답변 같다.

이런 응답도 있다.

"독자들이 당신의 책 '대담한 희망'을 읽고 '신년 작심(作心)'처럼 어떤 행동결의 같은 것을 하기로 한다면,어떤 결의를 천거하겠는가?" "관심 있는 문제가 있을 때 거기에 깊이 관여하자는 것이다.

무슨 문제이건 관계없다.

학교 제도를 개선(改善)하는 일,석유 수입을 줄일 전략을 생각해보는 일,아동 의료를 확대하는 일,무슨 문제이건 좋다.

우리는 우리가 행사해야 할 힘을 너무도 많이 직업 정치인들에게,로비꾼들에게,냉소주의에 내주고 있다.

그 결과 망가지는 것은 우리의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라는 것의 핵심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발언이다.

< 경희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