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마지막 1년을 관통할 화두는 '미래'라 할 수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지난 4년간 과거사 청산과 현실 모순 개혁에 초점을 맞췄다면 남은 1년은 집권 4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미래 청사진 마련에 전력투구할 것이란 전망에서다.

노 대통령은 새해 벽두부터 이 같은 향후 국정운영 방향을 누차 제시한 바 있다.

지난달 23일 신년연설에서 임기말 자신의 책임을 "이 시대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할 국가적 과제를 뒤로 넘기지 않는 것"이라고 규정한 데 이어 31일 국정과제위원회 심포지엄에서는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도리"라며 퇴임 직전까지 국정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기회 있을 때마다 "성공한 대통령이나 역사의 평가가 저의 관심이 아니다"는 강조하는 대목에서는 "필요한 개혁은 제 때 하겠다"는 결의가 느껴진다.

개혁이 필요한 과제로 노 대통령은 중장기 재정계획인 '비전 2030'을 비롯해 4년 연임제 개헌,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전시작통권 환수, 사법개혁, 방송통신 융합, 보험.연금 개혁 등을 제기한 상태다.

이들 과제에 대해 노 대통령은 "임기내 해결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그 이면에는 "부동산과 노사문제 등 몇 가지만 빼고 참여정부의 정책은 성공적이었다"는 참여정부 4년에 대한 자평과 "다음 정부에 어떤 후유증도 물려주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문제는 이들 과제가 하나 같이 국회의 초당적 협조가 필요하고 특정 계층의 고통분담이 수반되는 풀기 어려운 이슈라는 점에 있다.

더구나 불과 9월여 뒤에는 대선이 치러진다.

현실과 괴리돼 있는 듯한 미래과제를 추진하는 것 자체가 시기적 측면에서 정치적 논란의 소지를 안고 있고, 실제로 개헌을 비롯해 노 대통령이 설정한 대부분의 국정과제가 야당의 반발로 시작부터 마찰음을 내고 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개별 사안마다 정면돌파라는 강수를 둘 경우 정국 불안은 물론 임기말 국정운영에 불리한 환경을 조성할 것이 불보듯 뻔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노 대통령은 "할 일은 하겠다"며 '마이웨이'를 걷고 있다.

대선용이란 의구심을 낳았던 군복무기간 단축안을 밀어붙였고, 한나라당의 반대에도 개헌안을 발의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여당 당적을 조기에 정리해 중립적 위치에 서겠다는 데서는 임기말 역점과제로 설정한 미래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의 천착 강도와 앞으로 다가올 정치적 파장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다.

국정주도에 대한 노 대통령의 자신감은 도덕성에서 나온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노 대통령의 경우 적어도 가족 등 주변이 깨끗하다는 점에서 역대 대통령들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은 한보사태와 아들 현철(賢哲)씨의 국정개입, 국민신당 이인제(李仁濟) 후보 지원 의혹 등으로 임기말 국정의 끈을 놓쳤고, 결국 외환위기 등 국정파탄의 책임을 뒤집어써야 했다.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역시 이용호, 진승현, 최규선 게이트 등 잇단 대형 비리사건에 홍일, 홍업, 홍걸 세 아들과 일가 친척까지 연루되면서 국민의 지지를 잃고 청와대 관저에서 불우한 말년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전임자와의 이러한 차별성이 노 대통령으로 하여금 임기말 정책을 과단성 있게 추진할 수 있게 하는 숨은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주목되는 것은 노 대통령이 '정치'가 아닌 '정책'을 임기말 레임덕 방지 및 국정장악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전임자들이 '김심(金心)'으로 표현됐던 특정 대선후보에 대한 호불호를 정치권에 대한 유일한 지렛대로 삼았던 것과 달리 노 대통령은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정책적 이슈로 임기말 지지층 결집을 도모한다는 얘기다.

이를 둘러싸고는 정치적 해석이 엇갈린다.

노 대통령 입장에서는 "합법적인 권력을 임기 마지막까지 행사하는 것"(1월3일 신년인사회)이지만, 정권재창출이 지상 목표인 한나라당과 보수층에서 보면 "합법을 가장해 정국을 끝까지 쥐고 흔들려는 정치적 노림수"라고 불평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개헌구상만 해도 대선정국 초입의 혼돈 속에서도 지난달 9일 제안 후 한 달 넘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노 대통령 예고대로 내달 6일 임시국회 종료 후 개헌안이 발의되면 20일 이상 공고와 60일 이내 국회 의결 절차를 포함, 최대 5월말까지 대선정국의 핵심 변수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개헌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노 대통령으로서는 임기말 정국 대치의 정점에서 원내 1당인 한나라당과 맞섰다는 점에서 오히려 영향력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개헌의 고비를 넘기면 노 대통령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 카드를 꺼낼 것이란 전망도 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 사회 전반의 관심이 이 이슈에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면서 대선의 향배가 안갯속으로 빠질 개연성이 충분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야당, 특히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주요 정책 추진에 제동을 걸면서 정면대결을 불사할 것으로 보인다.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임기말 과제 대부분이 대선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노 대통령에게 잇단 선거 패배의 책임을 전가하며 여당의 웉타리를 벗어난 탈당파 또한 신당추진의 명분이 이 같은 '임기말 이슈'에 파묻힐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반노(反盧)'로 돌아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임기말 최우선 과제로 꼽히는 공정한 대선관리, 즉 정치적 중립문제에 대해서도 노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과는 차별화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지난 9일 한나라당 강재섭(姜在涉) 대표의 선거관리 중립 요구에 대해 "대통령도 정치인이어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킬 이유가 없다"고 일갈한 바 있다.

이로 미뤄 노 대통령의 남은 1년은 현실정치와 연동될 수밖에 없는 미래과제 추진을 놓고 야당 등 반대세력과 사사건건 충돌하며 파열음을 내는 상황도 예상이 가능해 보인다.

노 대통령이 "앞으로도 시끄러울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 자신이 그런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노 대통령의 향후 1년이 임기말 '식물대통령'으로 전락했던 전임자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란 전망에 설득력이 붙는 이유다.

(서울연합뉴스) 김재현 기자 j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