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八道 < 코리아랜드컴패니 회장 jpdhongin@hanmail.net >

법무부 범죄예방위원 활동을 하노라면 보람도 있지만 가슴 쓰라린 일도 많다. 중ㆍ고교의 '학교폭력 방지 및 불우학생을 위한 상담실' 운영을 지원하던 때만 해도 그렇다. 상담 내용을 보면 안타깝지 않은 경우가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한 여중생에 관한 상담 사례는 유독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사정은 이러했다. 여중생인데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진 않지만 걸핏하면 무단결석을 한다는 얘기였다. 알아본 결과 부모의 이혼 뒤 엄마는 새 가정을 꾸렸고 아빠는 무직(無職)인데다 술로 날을 지샌다고 했다. 손위 형제가 있었지만 다들 집을 떠난 데다 저 살기 바빠 동생을 돌볼 겨를이 없는 모양이었다.

아빠의 술 주정과 행패를 감당하지 못해 엄마한테 가면 새아빠 눈치가 보이고 참다 못해 다시 아빠한테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한다는 것이었다. 어디도 마음 편한 곳이 없다 보니 가출해서 주유소에서 생활하는 식이었다. 상담일지를 보니 "제 자식을 어떻게 저렇게 버려두나 기가 막혔다"고 돼 있었다.

상담자가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고 타이르면 마음을 잡고 학교에 다니지만 방학 때면 다시 방황한다는 보고였다. 학교에 갈 땐 그나마 괜찮은데 방학이 돼 집에서 아빠와 부딪치면 도저히 못견디고 가출한다는 것이었다. 철부지로 한창 응석을 부려야 할 나이에 어른들의 온갖 추한 모습에 멍이 들 대로 들었다는 내용엔 그저 가슴이 먹먹할 뿐이었다.

학교와 상담자들에 따르면 이처럼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부모 때문에 힘든 아이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부모가 없으면 정부나 복지기관,하다 못해 남의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을 텐데 아이를 제대로 키우기는커녕 괴롭히는 부모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거리로 내몰리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출산율이 낮아 큰일이라지만 실은 이처럼 부모가 있어도 전혀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복지시설에 맡긴 뒤 찾아오지 않는 건 물론 친권(親權)도 포기하지 않는 통에 입양조차 불가능한 아이들 또한 줄을 섰다고 한다. 부모의 도리는커녕 아이들의 앞길조차 막아버리는 셈이다.

낳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잘 기르는 일이다. 부모 대신 조부모가 손자 손녀를 키우는 조손(祖孫)가정이 갈수록 늘어날 뿐만 아니라 이들 대부분이 가난에 시달린다는 게 현실이다. 적극적인 출산 장려도 필요하겠지만 그 전에 결혼의 의미와 출산의 책임,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알리는 부모 교육이 절실해 보인다. 무작정 많이 낳으라는 식의 출산장려책은 자칫 국민소득과 상관없이 빈곤가정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도 주목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