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의 점심시간.

사찰의 발우공양처럼 침묵 속에 식사를 할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뷔페식으로 마련된 밥과 반찬을 큰 접시에 옮겨담은 수녀들이 식탁에 모여 앉자마자 왁자지껄 와글와글….여느 회사 구내 식당과 다를 바 없다.

마침 로마 교황청에서 온 주교 한 분이 수도원을 방문해 함께 식사 중인데도 아랑곳없다.

주교가 앉은 식탁에서도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덕분에 낯선 수도원에서 맞는 점심시간이 한결 편하고 여유롭다.

대전시 대흥동의 예수수도회 한국관구 본원.

대전성모병원 오른편의 성모초등학교·성모여고 교문으로 들어서 초등학교와 여고 건물을 다 지나면 교정 끝머리에 수도원이 있다.

수도회의 현판이 세로로 걸려 있는 구관은 1966년 성모초등학교를 설립할 당시 지은 3층 건물로 40년이 넘었고,그 오른편으로 1980년대 증축한 신관이 연결돼 있다.

신·구관 맞은편,학교 건물 뒤쪽에는 지난해 4월 문을 연 예수수도회 교육센터가 멋진 모습으로 서 있다.


"학교교육 외에 가정과 생명을 살리는 교육봉사의 장을 마련하기로 관구회의가 결정한 지 6년 만에 결실을 맺은 것이에요.

지역사회의 어려운 가정에 교육·문화·복지의 기회를 제공해 수도회와 학교,지역사회가 함께하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뜻이지요."

교육센터로 들어서면서 관구장 비서인 젤마나 수녀가 이렇게 설명한다.

교육센터 1층에는 저소득층 가정의 영유아들을 보살피는 어린이집과 기도실이 있고 대·소 강의실과 상담실·모임방(2층),대강당과 모래놀이 치료실(3층),400여석 규모의 콘서트홀(4~5층)도 있다.

지하에는 국제 규격의 수영장이 마련돼 있다.

"우리 수도회는 여성교육으로 잘 알려져 있어요.

아시아를 제외한 세계 곳곳에서 창설자와 그의 동료들은 '잉글리시 레이디스'라는 별명으로,즉 '영국여성수녀회'로 더 친숙하게 알려져 있지요.

특히 독일의 경우 예수수도회가 세운 학교가 많아서 그쪽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우리 할머니,어머니가 그 학교를 나왔다'는 경우가 많지요.

창설자의 이름을 딴 거리 이름도 많고요."

교육센터를 돌아본 뒤 본원 응접실에서 마주앉은 관구장 이금희 수녀(54)의 설명이다.

예수수도회는 헨리 8세가 영국국교회(성공회)를 세운 이후 가톨릭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던 1609년,영국 여성 메리 워드(1585~1645)가 창설한 교회사 최초의 활동수도회다.

남자수도회인 예수회처럼 세상 안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며 봉사하는 수도회를 세운 메리 워드는 그러나 숱한 고통과 고난에 직면한다.

당시 교회법은 여성 수도자에게 철저한 봉쇄와 관상을 통해서만 수도생활을 하도록 제한했기 때문이다.

봉쇄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회는 그의 수도회에 대해 폐쇄령을 내렸고 메리 워드를 감금하기까지 했다.

수도회의 이름도 초기에는 비공식적으로 '예수회'로 쓰다가 여러 차례의 존폐 위기와 탄압 속에서 '메리회''성 메리회' 등으로 바꿔 불러야 했다.

19세기 이후에는 '동정성모회'라는 이름을 써오다가 2002년 수도회 총회에서 예수수도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교황청 승인을 얻어 2004년부터 바뀐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박해시대를 살았던 메리 워드는 숱한 고난 속에서도 끝까지 순명하며 교회와 하느님에 충실했던 분이지요.

특히 여성들의 교육 기회가 적고 계층 간 차별도 심했던 당시에 그는 여성들에게 라틴어와 바느질,음악 등을 두루 가르치며 전인교육을 지향했어요.

그래서 세계교회사에서는 여성교육의 선구자로 평가되고 있지요."

예수수도회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64년.독일 뮌헨 님펜부르크 관구에서 수도자들이 들어와 2년 후 전세계 251번째 메리 워드 학교인 성모초교를 세우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수도생활의 거룩함을 세상 안에서의 활동으로 실현하는 것'을 지향하는 수도회의 회원은 현재 221명.대전 본원과 서울 오류동의 수련소를 비롯해 전국 40여 곳에 공동체가 있고,병원(익산성모병원)과 학교,유치원,어린이집,일산종합사회복지관,청소녀 쉼자리,국내외 선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웃을 구원하고 신앙을 옹호·전파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 모토예요.

그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구체적인 활동이 정해집니다.

지난해 우리 수도회는 중장기 전망을 수립하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보다 우리 영성에 맞는 활동에 보다 집중하기로 했는데,그게 바로 영성사도직과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사도직입니다."

수도자와 신자들의 영성적 수요에 대한 활동을 늘리고 물질적·정신적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언제든 달려갈 준비를 갖추겠다는 얘기다.

이 수녀는 "활동 속에서 관상에 힘쓰는 것이 우리의 수도 방법"이라며 "생활의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과 연결짓기 때문에 삶 자체가 기도"라고 설명한다.

그러면 하느님은 수도자들에게 어떤 답을 줄까.

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사립학교인 슈미트학교에서 14년 동안 교장으로 봉사하다 지난해 귀국한 이 수녀는 "하느님이 당신의 계획 안에서 다양하게 활용하신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앉은 수도생활 25년차의 젤마나 수녀는 "처음에는 하느님께 사도직을 잘 하게 해달라,건강도 달라,무엇도 달라고 많은 것을 원했지만 차츰 그 분의 현존(現存)만을 원하게 됐고,그러면서 편안해졌다"고 설명했다.

"제발 돈 때문에 사람들이 각박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가진 게 없으면 더 큰 자유를 누립니다.

사람들끼리 코드가 안 맞을 땐 내가 어디서 자유롭지 못한가를 깨닫는 계기로 삼으면 되지요.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많고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사람도 많은데 하느님이 원하는 삶의 모습은 분명 아닐 겁니다.

하느님이 준 각자의 재능만 잘 읽어내면 되는데 다들 1등을 하려고 하니 그것도 문제고요…."

이 수녀의 세상 걱정을 뒤로 한 채 수도원을 나서는데 여고생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겨울의 찬 공기를 기분 좋게 가른다.

대전=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