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1879∼1955)은 편지왕이었던 듯하다. 오래 전 세상을 떠났는데도 툭하면 새로운 편지가 공개돼 관심을 일깨우니 물리학뿐만 아니라 개인 마케팅에도 천재였나 싶을 정도다. 편지는 나올 때마다 스타 과학자의 색다른 면모를 드러내면서 아인슈타인이란 이름을 더욱 유명하게 만들고 있다.

사신(私信)을 통해 알려지는 아인슈타인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1986년 큰아들 한스가 내놓은 편지뭉치에 따르면 아인슈타인은 첫 부인 밀레바 마리치와 연애할 때와 헤어질 때 실로 엄청나게 다른 태도를 보인다. 스위스 취리히공대에서 만난 밀레바에게 보낸 첫 연애편지에 그는 이렇게 썼다.

"나처럼 강인하고 부모로부터 독립적인 또 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 얼마나 기쁜지 당신은 모를 거요. 당신을 생각하지 않고는 이 유감스런 사람들 무리 속에서 더 살고 싶은 생각이 없소." 그는 또 네 살 연상인 밀레바에게 '내 귀여운 병아리'라는 간지러운 호칭을 썼다. 그러나 결혼 후 사이가 벌어지면서 급기야 이런 편지도 보냈다고 돼 있다.

"이혼하고 싶지 않으면 이런 조건을 지키시오. 내 방과 옷을 항상 깨끗하게 정리하고,하루 세 끼 식사를 내 방으로 가져오고,내 물건에 절대 손대지 말고,옆에 앉으라고 하지 말고,함께 외출할 생각도 하지 말고,부르면 즉시 대답하고,어떤 애정도 기대하지 말고…."

이런 결혼이 유지됐다면 이상할 터,1914년 부부는 별거에 들어갔다. 아인슈타인은 베를린대 교수로 남고,밀레바는 두 아들을 데리고 스위스로 떠났다. 아인슈타인이 30대 중반이던 때의 일이다. 세기의 천재 과학자도 박봉에 남과 경쟁까지 해야 하는 봉급쟁이 노릇은 간단하지 않았던 것일까.

의붓딸 마고가 지녔던 편지 중 최근 공개된 것을 보면 초과근무와 주위의 시샘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고 한다. 멀리 있는 아들에겐 돈을 아껴쓰라는 당부도 한 모양이다. 아인슈타인의 편지는 이 세상 누구도 완벽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하기야 그 자신 이렇게 말했으니. "신 앞에서 우리는 똑같이 현명하고 똑같이 어리석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