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포럼] 돼지해 돼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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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참으로 이로운 동물이다. 온갖 형태로 인간에게 은혜를 베푼다. 한 잔의 소주에 곁들여 먹는 삼겹살 맛은 그 얼마나 일품인가. 돼지갈비나 목살 역시 생각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돌게 만드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식품이다. 기름 내장 피 가죽 털 뼈 족발까지 인간을 위해 내놓으니 이렇게 고마울 데가 없다. 췌장에서 뽑아내는 인슐린은 당뇨병 치료에 쓰이기도 한다.
요즘 들어선 인간의 미래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 돼지이기도 하다. 인간에의 장기 이식을 위해 연구용으로 키우고 있는 무균돼지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의 장기와 돼지의 장기는 아주 닮았고 크기 또한 비슷해 인간에 이식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무균돼지를 이용해 바이오 장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게 그리 먼 미래의 일도 아니라고 하니 난치병 환자 등의 생명이 연장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크다.
돼지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고 재복(財福)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꼽히기도 한다. 돼지가 꿈에 나타나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며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실제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 중 돼지꿈을 꾸고 복권을 구입했다는 경우도 적지가 않다. 올해는 황금돼지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으니 국민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 줄지도 모르겠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의 경우 돼지 덕분에 수도를 옮기는 혜택까지 입었다. 유리왕 시절에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겼는데 한 돼지를 쫓다가 국내성이 산수가 깊고 험하며 도읍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곳임을 발견하고 천도(遷都)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돼지와 관련해 정말 엽기적인 사건도 있다. 바로 사람돼지 사건이다. 중국 한 고조(유방) 때 황후였던 여후(呂后)는 젊고 아름다운 후궁 척부인에게 밀려 유방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 질투심에 이를 갈던 여후는 유방이 죽고나자 복수에 나서 척부인의 귀를 불로 지지고 벙어리로 만들었으며, 두 눈을 파내고 사지까지 절단해 변소간에 던져넣었다. 그리고선 인저(人猪·사람돼지)라고 부르며 한을 풀었다.
얼마나 갈등의 골이 깊고 원한이 뼈에 사무쳤으면 그런 일까지 벌였으랴마는 정말 끔찍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여후의 아들인 혜제는 어머니의 이런 행동에 충격을 받아 국사를 돌보지 않고 방탕한 생활로 일관하다 24세에 요절했으니 여후는 척부인뿐 아니라 제 자식마저 죽인 셈이다. 이런 역겨운 이야기까지 떠오르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 역시 극단적 갈등과 대립이 만연해 있는 탓일 게다. 상대방은 철저히 무시한 채 자신의 목소리만 높이고 자신의 이익에만 매달리는 풍토가 지배하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를 도왔던 무학대사는 돼지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돼지로 보이고 부처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부처로 보인다고 했다. 좋은 마음을 가지면 돼지처럼 세상에 큰 이로움을 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이익만 좇다 보면 사람돼지를 만드는 경악스런 일까지 저지를 수 있는 게 사람이다. 새해엔 독자분들 모두 보다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갈등과 대립이 한층 고조될 수밖에 없는 대선을 치러야 하는 해이기에 바람이 더욱 크다.
이봉구 논설위원 bklee@hankyung.com
요즘 들어선 인간의 미래 희망을 상징하는 것이 돼지이기도 하다. 인간에의 장기 이식을 위해 연구용으로 키우고 있는 무균돼지가 바로 그것이다. 사람의 장기와 돼지의 장기는 아주 닮았고 크기 또한 비슷해 인간에 이식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무균돼지를 이용해 바이오 장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게 그리 먼 미래의 일도 아니라고 하니 난치병 환자 등의 생명이 연장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크다.
돼지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고 재복(財福)과 행운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꼽히기도 한다. 돼지가 꿈에 나타나면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며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실제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 중 돼지꿈을 꾸고 복권을 구입했다는 경우도 적지가 않다. 올해는 황금돼지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으니 국민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 줄지도 모르겠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의 경우 돼지 덕분에 수도를 옮기는 혜택까지 입었다. 유리왕 시절에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도읍을 옮겼는데 한 돼지를 쫓다가 국내성이 산수가 깊고 험하며 도읍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곳임을 발견하고 천도(遷都)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돼지와 관련해 정말 엽기적인 사건도 있다. 바로 사람돼지 사건이다. 중국 한 고조(유방) 때 황후였던 여후(呂后)는 젊고 아름다운 후궁 척부인에게 밀려 유방의 총애를 받지 못했다. 질투심에 이를 갈던 여후는 유방이 죽고나자 복수에 나서 척부인의 귀를 불로 지지고 벙어리로 만들었으며, 두 눈을 파내고 사지까지 절단해 변소간에 던져넣었다. 그리고선 인저(人猪·사람돼지)라고 부르며 한을 풀었다.
얼마나 갈등의 골이 깊고 원한이 뼈에 사무쳤으면 그런 일까지 벌였으랴마는 정말 끔찍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여후의 아들인 혜제는 어머니의 이런 행동에 충격을 받아 국사를 돌보지 않고 방탕한 생활로 일관하다 24세에 요절했으니 여후는 척부인뿐 아니라 제 자식마저 죽인 셈이다. 이런 역겨운 이야기까지 떠오르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 역시 극단적 갈등과 대립이 만연해 있는 탓일 게다. 상대방은 철저히 무시한 채 자신의 목소리만 높이고 자신의 이익에만 매달리는 풍토가 지배하고 있으니 참으로 걱정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를 도왔던 무학대사는 돼지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돼지로 보이고 부처의 눈으로 보면 모두가 부처로 보인다고 했다. 좋은 마음을 가지면 돼지처럼 세상에 큰 이로움을 줄 수도 있지만 자신의 이익만 좇다 보면 사람돼지를 만드는 경악스런 일까지 저지를 수 있는 게 사람이다. 새해엔 독자분들 모두 보다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갈등과 대립이 한층 고조될 수밖에 없는 대선을 치러야 하는 해이기에 바람이 더욱 크다.
이봉구 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