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말리키 총리 '희생양' 될 듯

사담 후세인 전(前) 이라크 대통령의 교수형 장면을 휴대전화로 찍은 생생한 동영상 유포 파장이 커지는 등 '후세인 후유증'이 증폭되는 가운데 미국이 후세인 문제에서 눈에 띄게 거리 두기를 시도하고 있다.

불공정한 후세인 재판과정과 조기 사형집행 문제를 사실상 배후 조종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미국이 종파 간 폭력사태의 새로운 시한폭탄이 된 후세인 문제에 대해 '우리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
후세인 처형 뒤 벌어지는 모든 갈등과 충돌의 책임을 은근히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에게 떠넘기는 형국이다.

문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후세인 처형 동영상 유포에 대해 이라크 정부가 조사에 착수했다고 하자 백악관 토니 스노 대변인은 "이라크는 주권국가며 이라크 정부는 그들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바를 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잘마이 칼릴자드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가 후세인 사형 집행일을 이슬람의 최대 명절인 희생제가 지난 뒤로 2주 정도 미룰 것을 이라크 정부에 요청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뒤늦게 흘러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어 이라크 주둔 미군 대변인 윌리엄 칼드웰 소장은 3일 미군은 이번 후세인의 교수형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으며 만약에 관여했다면 '다른 방식'으로 처리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칼드웰 소장은 "만약 사형시점에 미국이 실질적인 책임을 지고 있었다면 우리는 다르게 일을 처리했을 것"이라며 "미군은 휴대전화 소지를 포함해 사형 집행에 관한 모든 보안 대책을 이라크 정부에 넘기고 철수했다"고 강조했다.

예상을 뒤엎은 조기사형 뿐 아니라 문제의 동영상 유포 등 처형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허술한 집행절차와 정치적 편향성에 쏟아지는 비난에서 발을 빼자는 계산이다.

그는 이어 이번 후세인의 사형 뒤 환멸을 느끼고 있는 수니파도 돌아봐야 한다며 포용적인 제스처까지 내비쳤다.

미국은 이렇게 가장 민감한 문제로 떠오른 후세인 처형에 서서히 발을 뺌으로써 더는 이라크 폭력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이라크 문제를 조기 종결하려는 절차로 풀이된다.

후세인 처형 직후 일어나는 모든 이라크 문제는 이라크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며 알-말리키 정부가 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알-말리키 총리의 퇴진설이 솔솔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알-말리키 총리가 미국 대신 짐을 지고 자진 사퇴해 주기를 미국 정부는 내심 바라고 있을 공산이 크다.

한편, 후세인 전 대통령 처형 및 처형과정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것과 관련, 백악관은 이라크 주둔 미군당국 및 이라크 대사가 후세인 처형을 전후해 이미 `우려'를 표명한 점을 언급하며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했다.

스콧 스탠즐 백악관 부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라크 미군 대변인인 칼드웰 소장과 이라크 주재 유엔 대사가 '우려'를 표명한 점을 상기시킨 뒤 "부시 대통령의 관심 초점은 사법적 처리과정과 앞으로 일을 처리해 가는 방법"이라고만 밝혔다.

스탠즐 부대변인은 또 수니파 등 후세인 지지세력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고 있는, 휴대폰으로 촬영된 후세인 처형장면 동영상을 부시 대통령이 봤느냐는 질문에 "보지 않았다"면서 "대통령의 관심의 초점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두바이연합뉴스) 김병수 강훈상 특파원 hskang@yna.co.krbings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