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페이퍼컴퍼니로 불법대출ㆍ횡령 죄질 나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김득환 부장판사)는 건설사를 운영하며 해외 페이퍼컴퍼니(실체없이 서류형태로만 존재하는 회사)를 설립해 저축은행 경영권을 인수한 뒤 부당대출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건설사 前대표 권덕만씨에게 징역 5년, 추징금 191억원을 선고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건설시행사가 저축은행 경영권을 인수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어서 인수가 어렵게 되자 건실한 미국계 펀드가 국내 금융기관에 투자하는 것처럼 꾸며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경영권을 인수한 뒤 대출한도를 어기고 자신의 건설사에 부당대출해 죄질이 나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국내에서 이같이 자신은 돈을 들이지 않고 페이퍼컴퍼니로 금융기관을 인수한 후 그 기관 자산을 유용한 사건은 2000년의 `진승현 게이트'인데 그 사건이 큰 물의를 일으켰음에도 다시 동종 사건이 벌어진 건 피고인이 법과 제도의 엄중함을 가볍게 보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부당대출은 건설사의 모험사업에 따른 위험을 부당하게 저축은행 주주ㆍ예금자에게 전가한 것으로 자본주의 질서를 깨뜨리고 국가 재정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피고인이 금융기관 인수를 위해 동원한 자금 규모는 진승현의 그것보다 더 크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현재 저축은행 재무구조가 건실해졌지만 이는 다른 업체가 새 자금을 투입했기 때문이지 피고인의 재산 출연에 기인한 게 아니고, 이들 업체는 각자 경영 판단에 따라 투자한 것일 뿐이다.

피고인이 횡령ㆍ배임액의 상당 부분을 회복시켰다고 해도 엄정하게 처벌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권씨는 2003년 8월~지난해 말 모 저축은행 인수를 위해 자신이 운영하던 3개 회사의 자본금과 차입금 수백억원을 빼돌리고 차입금 상환 등 명목으로 수십차례에 걸쳐 약 1천30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됐다.

(서울연합뉴스) 임주영 기자 z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