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錫淳 < 이화여대 교수·환경공학 >

수질(水質) 관리에 헌법 같은 존재가 수질 기준이다.

먹는 물을 비롯해 농업용수,공업용수,하천,호수 등 물의 용도와 상태에 따라 관리돼야 할 항목과 농도를 법으로 정해두고 지키는 것이다.

수질기준은 1907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해 현재 환경관리를 제도화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7년 환경보전법이 제정되면서 도입됐다.

그러나 당시 미국,유럽,일본 등이 정해둔 기준들을 여기저기서 끌어와서 실제 적용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일례로 최근 급식에 사용된 지하수 오염으로 문제가 된 질산성 질소의 경우 먹는 물의 수질기준은 10ppm(mg/L)인 반면 호수나 저수지의 농업용수 수질기준은 1ppm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질소를 기준으로 하면 먹는 물보다 10배 이상 깨끗한 저수지 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얘기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어처구니없게 들리지만 이 기준이 지금 우리나라 수질관리에 통용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국가적 논란이 됐던 새만금 사업도 수질기준이 말썽이었다.

2001년 당시 새만금 담수호(淡水湖)의 수질을 환경부가 예측한 결과 총인(인 성분을 모두 합한 것)의 농도가 0.103mg/L로 나타났다.

농업용수 기준인 0.1보다 0.003 높게 예측돼 담수호 물은 농사짓기에도 부적합하다는 결론이 새로운 논란의 시작이었다.

유효숫자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0.003도 문제였지만 비료성분인 인에 농업용수 기준이라는 잣대를 들이댄 것이 잘못이었다.

최근에는 특정 유해물질로 분류된 구리가 문제다.

수질환경보전법은 인체나 생태계에 피해가 큰 수질항목 19가지를 특정유해물질로 분류하고 있는데 구리가 납,카드뮴,비소 등과 더불어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이러한 물질을 사용하는 시설은 상수원 보호구역이나 특별대책지역에의 입지를 금하고 있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한 반도체회사는 지금까지 반도체 제조에 특정유해물질이 아닌 알루미늄을 사용해 왔기 때문에 팔당호 상류지역에서 공장을 가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반도체의 연산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앞으로 알루미늄 대신에 구리를 사용해야 한다.

문제는 구리가 특정유해물질이기 때문에 지금의 공장을 폐쇄하고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구리는 인간을 포함한 포유동물의 필수미량원소로서 성인의 경우 1일 섭취권장량이 2mg이다.

과다 섭취의 경우 위장장애를 일으킬 수 있으나 섭취량의 98% 정도를 분변(糞便)으로 배설하기 때문에 인체에 독성을 나타내는 경우는 드물다.

구리는 생활하수나 축산폐수에도 들어있고,구리를 사용하는 산업체의 폐수에서도 배출된다.

그래서 하천이나 호수,먹는 물에도 존재한다.

구리의 먹는 물 수질기준은 우리나라와 일본은 1.0,미국은 1.3mg/L로 정해져 있다.

구리는 인체보다 물고기에 독성을 보인다.

보통 물고기는 인체에는 적합한 농도인 100μg/L,어린 치어는 15μg/L 정도에서 독성이 나타난다.

외국에서는 이것 때문에 구리를 규제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생태계 보호를 위한 하천이나 호수의 수질기준에는 구리가 아예 관리 항목에도 없다.

필요한 용도에는 기준이 없고 그렇지 않은 데는 입지 자체를 금지하는 강력한 규제를 하는 꼴이다.

수도권 2200만의 상수원을 위해서라면 수조원이 들더라도 공장을 이전해야 하겠지만 잘못된 수질기준으로 이런 우(愚)를 범하는 것은 세계에 부끄러운 일이다.

환경관리 기본 원칙에 사전예방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라는 것이 있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으면 사전에 막아야 한다는 논리로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접근을 요하는 원칙이다.

과거 수질 항목과 기준을 정할 때 이 원칙에 따라 일말의 가능성이 있더라도 엄격한 규제를 가했다.

그러나 그동안 환경과학은 급속히 발달했고 많은 사실을 밝혀냈다.

이제 밝혀진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잘못된 수질기준을 시급히 정비하는 것이 환경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