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伊 최고 흥행작…정교한 연출 돋보여

제목부터 아련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영화 '창문을 마주보며(Facing Window)'. 2003년 이탈리아 최고 흥행작으로 작품성도 함께 인정받아 같은 해 도나텔로 어워드를 비롯,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 이탈리아 영화비평가협회 등에서 최우수작품상ㆍ여우주연상ㆍ음악상 등을 받았다.

도나텔로 어워드는 이탈리아의 골든글로브라고 일컬어지는 상.
감독은 터키 출신의 페르잔 오즈페텍. 인간의 탐욕과 욕망 등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며 시공간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연출력으로 흥행성과 작품성을 동시에 인정받고 있다.

출연 배우의 면면도 화려하다.

국내에는 영화 '라스트 키스'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최고의 여배우 지오반나 메초지오르노가 여주인공 지오반나 역을 맡았다.

그녀는 지난해 제62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더 비스트 인 더 하트(The Beast In the Heart)'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면서 세계적인 여배우로 성장한 인물이다.

여기에 이탈리아 청춘스타 라울 보바와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천국의 문' 등에 출연했던 원로배우 마시모 지로티가 가세했다.

보바는 여주인공 지오반나가 창문 너머로 지켜보며 사모하는 로렌조를, 지로티는 기억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노인 다비데 역을 맡았다.

고단한 결혼생활을 보내고 있는 지오반나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창문 너머 맞은편 집의 남자를 향해 품고 있는 은밀한 감정이 그것. 남편과 두 아이를 재우고 그녀는 매일 밤 자신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멋진 남자 로렌조를 바라보며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길을 잃은 노인을 집으로 데려온다.

기억하는 것은 시모네라는 이름뿐인 노인은 지오반나의 고단한 인생에 새로 생긴 짐일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노인의 실종으로 우연한 기회에 로렌조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 역시 자신을 사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창문을 마주보며'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을 담아낸 영화다.

영화의 두 축인 지오반나와 다비데는 모두 대의를 위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한 사람들. 나치가 마을 사람들을 잡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알게 된 다비데가 애인 시모네에게 달려가는 대신 마을사람을 먼저 찾은 것처럼 지오반나 역시 결혼 9년 만에 찾아온 사랑을 남편과 아이 때문에 포기한다.

'창문을 마주보며'는 뭐니뭐니해도 연출력이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다.

1943년과 2003년을 오가며 영화는 정교하게 짜맞춰진 건축물처럼 탄탄한 연출력을 과시한다.

영화 초반에 시모네라는 이름만을 기억하는 노인 다비데의 등장은 '생뚱맞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생경하게 다가오지만 다비데의 삶은 지오반나의 삶과 병치되면서 포기해야 하는 사랑의 울림을 공고하게 만드는 주춧돌이 된다.

영화의 끝 부분에 등장하는 "살아 있다는 것에 만족하지 말아요.

당신 자신에서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요구해야 돼요.

그저 꿈꾸는 것이 아니라"라는 다비데의 대사는 현대인들에게 다시 곱씹어봐도 좋을 명대사로 기억될 만하다.

내년 1월4일 개봉. 관람 등급 미정.

(서울연합뉴스) 홍성록 기자 sunglo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