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永龍 < 전남대 교수·경제학 >

기업은 돈을 벌기 위해 생기고, 학교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생긴다. 이들 조직의 목표는 구체적이다. 반면에 취미, 특기, 습관, 그리고 가치관 등이 서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국가는 개인들의 집합체다. 이렇듯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국가의 목표는 추상적이며, 국가의 책무는 그들이 각자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유를 보장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무(責務)는 외부적으로는 적의 침략을 막고 내부적으로는 치안을 유지하는 일 등이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가의 역할이 크게 확대됐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총생산 대비(對比) 정부 예산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기업 활동은 물론이고 이른바 특별한 것이라고 인식하는 의료, 교육, 주택, 토지 문제 등에도 국가가 광범위하게 개입하고 있다.

우리의 교육을 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 치고 안 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수많은 실험을 해왔다. 대학입시제도만 해도 수차례 바뀌었다. 그 중에는 폐기된 제도가 다시 등장하기도 했다. 평준화를 고집한 결과 학교는 졸업장만 수여할 뿐 공부는 학원에서 한다. 불행하게도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자기 생각을 할 줄 아는 학생들은 별로 많지 않다. 우리의 교육 현장은 사실상 황폐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 그뿐인가. 한 연구자의 주도 아래 잘 나가던 줄기세포 연구도 국책사업으로 밀어붙인 결과 파국을 초래했다. 대학 연구비의 많은 부분을 국가가 관장함은 물론 교수들이 논문을 게재하는 전문 학술지도 국가 기관이 등급을 매긴다. 최근에는 국가 석학(碩學)까지 선임했다. 교육 영역에 국가의 손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그 개입은 실로 넓고 깊다.

지금은 사립학교법(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여야 간 대립으로 국회에서 내년 예산안까지 발목이 잡혀있는 상황이다. 일부 비리 사학(私學)을 척결한다는 명분으로 사학 전체를 옭아매는 작년의 사학법 개정이 여전히 불씨를 안고 있는 것이다. 종교 사학재단의 대표자들은 개방형 이사제 등의 독소조항을 폐지하는 사학법 재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순교할 각오로 투쟁에 임하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보이기도 했다.

사학의 운영은 설립자의 재산권에 속한다. 재산권이 보호돼야 자율성이 보장되고 건학(建學) 이념을 충실하게 실천할 수 있다. 어느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부 사학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개방형 이사제 등을 포함한 재산권 침해 조항을 광범위하게 삽입해 사적 존재인 사립학교를 공적 존재로 전환해야 할 명분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비리를 처벌할 수 있는 법은 얼마든지 있다.

"자유란 우리 모두가 무지하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신과 같이 전지전능한 인간이 있다면 자유는 의미가 없다"는 하이에크의 지적을 되새겨볼 때다. 국회나 정부 내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주체는 개인들이다. 그들 역시 기본적으로 무지(無知)한 존재들이다.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국회의원이나 정부 관료라면 별다른 문제도 없는 사학법을 원래대로 되돌리지 않고 사학의 자유를 박탈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지지도 못할 제3자가 개입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국가 주도로 이뤄진 교육이 얼마나 황폐한 결과를 초래했는지는 조금만 뒤돌아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나날이 떨어지는 학생들의 학력수준, 끊임없이 늘어나는 교육 탈출, 고급 두뇌의 외국 유출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교육은 특별하기 때문에 국가가 특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특별하게 망가뜨리는 일을 이제는 중단해야 한다.

지금은 시기적으로도 사학법에 매달려 에너지를 소모할 때가 아니다. 한·미동맹의 균열과 북한의 핵실험으로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는 안보 불안을 해소하는 일이 훨씬 더 시급하다. 그것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