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필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은 1947년 경기도 남양주에서 1남2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신낙균 현 민주당 부대표가 맏언니다.

두 자매가 모두 대한민국의 대표 여성리더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역시 어머니가 있었다. 신 총장이 3살이던 1950년 당시 6·25 전쟁 통에 남편을 잃은 신 총장의 어머니는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사업을 새로 시작해야 했다.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결혼 장례 등 주변의 경조사를 직접 챙기는 한편 산파 노릇까지 도맡아 지역사회의 신망이 두터웠다. 신 총장은 "항상 남을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으셨던 어머니로부터 이웃과 함께 나누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신 총장이 이화여대 재학 중에 '더 파워'라는 학생조직을 결성하고 철거민을 위한 학생운동을 벌인 것도 이러한 유년시절의 경험이 바탕이 됐다. 이대를 졸업한 후 당시 진보정당이었던 통일사회당의 추천을 받아 1973년 스웨덴 유학을 떠난 신 총장은 이듬해 터진 민청학련 사건으로 인해 뜻하지 않던 긴 타향살이를 해야 했다.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사회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마친 그는 1995년 귀국할 때까지 국가사회보험청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덕분에 인정받는 사회복지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귀국 이후 한국크리스챤아카데미 사회교육원 원장,청와대 시민사회 비서관,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이사장을 역임했고 올 6월부터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을 맡아 일하고 있다. 얼마전 작고한 이종욱 WHO 사무총장의 동생이기도 한 이종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과의 사이에 대학생 딸 하나를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