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전 의장이 18년 재임기간 동안 했던 발언 중 가장 유명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란 말이 등장한 지 10년이 됐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1996년 12월5일 미 기업연구소(AEI)의 연례 저녁 만찬에서 당시 미 증시의 랠리에 대해 "자산 가격을 과도하게 끌어올리는 비이성적 과열을 과소평가해선 안된다. 자산 가격은 통화정책의 중요한 판단기준이다"라고 말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는 1995년 11월 5000을 넘어 1996년 10월엔 다시 6000을 돌파했고 그린스펀이 비이성적 과열을 언급한 날엔 6437로 불과 4년 만에 두 배로 급등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중앙은행이 시장을 진정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그린스펀의 발언은 중앙은행 수장의 증시 과열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졌고 이튿날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증시가 급락했다.

그러나 이후 몇달 동안 주가는 꾸준히 올랐고 FRB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그린스펀이 자신의 발언에서 한발 물러선 것처럼 보였다. 2001∼2002년 증시는 결국 급격한 하락세를 나타냈고 경제전문가들은 그린스펀이 강세장에서 적절한 처방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996년 처음으로 거품을 경고한 그린스펀이 필요한 대책을 서두르지 않아서 미 경제가 더 큰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동안의 경제지표를 통해 1996년 12월 증시가 비이성적 과열 상태였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답은 '노(NO)'다. 주가가 지나치게 고평가됐었다면 지난 10년 동안 수익률이 저조했어야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미국 증시를 포괄하는 다우존스 윌셔 5000지수의 수익률은 지난 10년간 연평균 8.2%로 상당히 좋은 기록을 올렸다.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는 이보다 더 높았다. 그린스펀이 비이성적 과열을 언급할 당시 증시는 이상 과열된 게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린스펀이 경고한 비이성적 과열은 1999∼2000년에 가서야 나타났다. IT(정보기술) 붐으로 기술주들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이 때도 비(非)기술주들엔 거품이 끼지 않았다. FRB는 1999년 여름부터 2000년 3월까지 연방기금금리를 여섯 차례 인상,9년 만에 최고치인 6%까지 올렸다. 하지만 기술주 투자자들과 애널리스트들은 금리인상이 IT 기업들에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FRB를 비웃었다. 만약 FRB가 이 시기에 금리를 더 올렸다면 IT 분야 이외의 기업들이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1990년대 후반 그린스펀의 정책은 어떤 잘못도 없는 결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린스펀이 비이성적 과열이란 말을 입밖에 냈을 때 증시에는 거품이 끼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후 그가 비이성적 과열에서 한발짝 물러선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결국 비이성적 과열이 증시를 강타했지만 수년이 지난 뒤였고 영향을 미친 영역도 그린스펀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우려한 곳이 아니었다.

정리=장경영 기자 longrun@hankyung.com

◇이 글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제레미 시겔 교수가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Irrational Exuberance,Reconsidered'를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