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딥 프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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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에 의해 독방에 갇힌 주인공은 외로운 나머지 머리 속으로 체스를 둔다. 온갖 경우의 수를 외운 그는 풀려난 뒤 우연히 만난 체스 챔피언과의 대결에서 대승하지만 뻔히 아는 상대의 다음 수를 기다리기 힘들어 한다. 이를 간파한 챔피언이 시간을 끌자 초조해하다 터무니없는 악수를 던진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체스'의 줄거리다. 모든 게임이 그렇듯 체스 역시 심리전이다.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사람과 컴퓨터가 싸우면 사람이 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컴퓨터는 기분에 휩쓸리지 않아 이미 놓은 수에 상관없이 최선의 수를 찾아내는 만큼 사람이 대적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체스는 서기 600년께 인도에서 생겨나 페르시아를 거쳐 11세기 전후 유럽으로 퍼졌다. 원래 이름은 차투랑가였는데 1470년 무렵 체스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16세기 후반엔 귀족문화로 발전,유럽 궁정에선 마당에 커다란 체스판을 그린 다음 보병과 기병을 세워놓고,단상에서 명령해 움직이도록 하는 실물체스가 유행했다고도 한다.
사람과 컴퓨터의 체스 게임이 시작된 건 1996년. IBM이 만들어낸 '딥 블루'와의 첫 대국에선 사람이 이겼다. 6전 3승2무1패로 승리한 세계 챔피언 카스파로프는 "계산기계의 야수적 힘에 맞선 인간 통찰력의 승리"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그는 다음해 연산속도가 2배 이상 향상된 컴퓨터와 싸워서 졌다.
이후 세계 챔피언이 된 블라디미르 크람니크가 2002년 독일의 '딥 프리츠'에 도전했으나 무승부(2승2패4무)로 끝났고,4년 만인 올해 재도전했으나 완패했다(6전 4무2패). 핀처 박사라는 가상의 인물이 카스파로프의 패배를 되갚은 것으로 설정된 베르베르의 소설 '뇌'와는 차이가 있는 셈이다.
크람니크는 1~2년 안에 설욕하겠다고 다짐한 모양이다. 결과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나설 것이다. 소설 속 핀처 박사의 말처럼 인간에겐 컴퓨터에 없는 '동기'라는 게 있고 그로 인해 그 어떤 한계와 불가능도 극복해온 까닭이다. 각오하고 노력하는 자의 힘은 무한하지 않던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체스'의 줄거리다. 모든 게임이 그렇듯 체스 역시 심리전이다.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사람과 컴퓨터가 싸우면 사람이 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컴퓨터는 기분에 휩쓸리지 않아 이미 놓은 수에 상관없이 최선의 수를 찾아내는 만큼 사람이 대적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체스는 서기 600년께 인도에서 생겨나 페르시아를 거쳐 11세기 전후 유럽으로 퍼졌다. 원래 이름은 차투랑가였는데 1470년 무렵 체스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16세기 후반엔 귀족문화로 발전,유럽 궁정에선 마당에 커다란 체스판을 그린 다음 보병과 기병을 세워놓고,단상에서 명령해 움직이도록 하는 실물체스가 유행했다고도 한다.
사람과 컴퓨터의 체스 게임이 시작된 건 1996년. IBM이 만들어낸 '딥 블루'와의 첫 대국에선 사람이 이겼다. 6전 3승2무1패로 승리한 세계 챔피언 카스파로프는 "계산기계의 야수적 힘에 맞선 인간 통찰력의 승리"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그는 다음해 연산속도가 2배 이상 향상된 컴퓨터와 싸워서 졌다.
이후 세계 챔피언이 된 블라디미르 크람니크가 2002년 독일의 '딥 프리츠'에 도전했으나 무승부(2승2패4무)로 끝났고,4년 만인 올해 재도전했으나 완패했다(6전 4무2패). 핀처 박사라는 가상의 인물이 카스파로프의 패배를 되갚은 것으로 설정된 베르베르의 소설 '뇌'와는 차이가 있는 셈이다.
크람니크는 1~2년 안에 설욕하겠다고 다짐한 모양이다. 결과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나설 것이다. 소설 속 핀처 박사의 말처럼 인간에겐 컴퓨터에 없는 '동기'라는 게 있고 그로 인해 그 어떤 한계와 불가능도 극복해온 까닭이다. 각오하고 노력하는 자의 힘은 무한하지 않던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