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賢在 < 중소기업청장 >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 이면에 한 명의 열정적인 교수가 있음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는 바로 '실리콘밸리의 아버지'라고 일컬어지는 프레드릭 터먼 교수다. 살구나무와 호두나무 과수원이 주를 이루던 샌타클레라를 실리콘밸리로 성장시킨 이가 바로 스탠퍼드대학의 터먼 교수인 것이다.

그는 졸업생의 대부분이 동부 대도시로 진출하는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 주변에 학생들이 일할 회사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문하생(門下生)이던 휴렛과 팩커드에게 모교 인근에서 창업할 것을 권유해 1939년 실리콘밸리의 원조격인 '휴렛팩커드'의 창업을 이끌어냈다. 이렇게 출발한 실리콘밸리는 스탠퍼드대학이 고급 인력과 신기술을 뒷받침하면서 대학과 산업계가 상호 협력하는 상생의 문화를 형성,성장해왔다.

우리는 어떠한가? 그간 산학협력의 중요성이 강조돼 왔으며, 실제로도 많은 산학협력이 있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50% 이상의 중소기업이 대졸 신입사원의 업무 성취도에 불만을 느끼고 있으며, 신입사원의 재교육에도 16개월이나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는 대학 교육이 중소기업 현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물론 중소기업도 잘못은 있다. 자신은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대학이 도와주지 않는다고만 불평하는 중소기업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한편에서는 대학의 위기를 말한다. 또 다른 편에서는 중소기업의 위기를 말한다. 대학과 중소기업이 위기를 벗어나는 해법은 실리콘밸리의 예에서 보듯 대학과 중소기업 간 상생(相生)의 산학협력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학은 중소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한편 학문적 성취를 현실에 접목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競走)하고, 중소기업도 필요한 기술과 인력 등의 요구사항을 대학에 적극 주문하고 지원하는 자세로 임할 때 진정한 산학협력이 이뤄지며, 이럴 때 비로소 대학과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상생의 산학협력 사례가 있다. 원주의 의료기기 단지가 바로 그곳이다. 군사도시로서 별다른 산업기반을 갖추지 못한 원주에서,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의료산업 클러스터가 탄생한 것은 연세대 의공학부 교수의 헌신과 노력이 토대가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곳은 대학과 입주업체 간 끈끈한 산학 협력을 바탕으로 작년 650억원, 금년 1350억원, 내년에는 2500억원으로 매출이 증가하는 등 급성장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예가 아니더라도 산학협력은 시대적 과제이며 산학협력 없이는 대학, 그리고 중소기업의 미래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1등 제품과 1등 기업'은 '1등 사람'의 토대에서 가능하고, '1등 사람'은 다름 아닌 '1등 교실과 1등 학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지식기반사회에서,국제적 무한경쟁시대에서 우리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산학협력을 통해 '1등 제품' 개발을 향한 열정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산학협력은 협력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중소기업 연구개발 기반 구축, 현장에 맞는 기술인력 양성 등의 목적달성을 위한 최적(最適) 수단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산·학·연 협력을 통해 상호 이득이 된다면 산학협력 메커니즘은 자연스레 선순환 구조로 작동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정부도 산·학·연 협력사업을 수요자 중심으로 개편하는 한편, 대학과 중소기업이 실질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연구기반 마련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지역혁신체계와의 연계를 통해 지역별 특성을 살린 산학협력 정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지역 중소기업과 대학이 지역혁신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제는 대학과 중소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산학협력에 나설 때다. 대학과 중소기업이 상생의 산학협력을 토대로 위기에서 벗어나 우리 경제를 선도하는 혁신주체로서 활약하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