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慶洙 <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

사내유보금(기업이 번 돈에서 배당금으로 지급하고 남은 잉여금)이 넘치고 있다. 12월 결산 상장회사(제조업체) 535개사의 자본금 대비 유보율(留保率) 평균이 9월 말 현재 600%를 넘었으며 작년 말보다 40% 가까이 증가했다.

사내유보가 많다는 것은 기업의 재무구조가 그만큼 개선됐다는 것을 의미하며,근래 들어 주가가 상향 조정된 것도 주요인이다. 하지만 사내유보의 증가는 동시에 기업의 투자수요가 줄어든 것을 반영한다. 투자 감소는 총수요 부족으로 현재의 경기를 위축시킬 뿐 아니라 미래의 경제성장도 떨어뜨린다. 요약하면 기업에 돈이 넘치는 것은 외환위기의 위험으로부터 한국경제를 방어하는 데는 결정적인 힘으로 작용하겠지만 대신 이는 낮은 경제성장을 담보로 이룬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투자부족으로 인한 잠재성장률의 하락,일자리 부족을 우려하고 있으며 반기업정서,출총제와 같은 기업규제나 일관성 없는 정부정책을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거시적 시각에서 살펴보면 단지 기업환경을 개선해서 극복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며 구조적인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산업생산에서 차지하는 제조업의 비중은 지난 4반세기 동안 꾸준히 증가해 왔으며 2005년 40%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고용비중은 1990년대부터 줄어들었으며 같은 해 19%에 불과하다. 더욱이 제조업의 고용수준 자체가 감소하는 탈(脫)공업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생산비중이 늘어나는 것은 제조업부문의 생산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음을 반영한다. 즉 제조업체의 시내유보가 증대한 것은 투자를 회피해서라기 보다는 높은 생산성의 결과 거둔 잉여자금이며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서비스업은 제조업과 정반대의 양상을 보인다. 사회간접자본 및 서비스업의 고용은 통계가 작성된 이후 줄곧 증가,2005년 73%에 이르고 있으나 산업생산비중은 감소해 55%에 불과하다. 특히 생산비중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크게 하락하고 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 격차가 심화되는 것은 제조업의 구조조정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으며 대기업을 중심으로 제조업의 부가가치가 높아지면서 잉여노동이 서비스부문으로 배출된 결과로 해석된다. 물론 서비스업 가운데서도 정보통신업과 같이 일부 고부가가치 업종도 있으나 낙후된 부문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 결과 일부 대기업은 세계적 수준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한국경제는 저성장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저렴하고 품질 좋은 소비재를 향유할 수 있게 돼 생활수준은 윤택해졌으나 사교육비,높은 집값에 가계는 허리가 휜다. 이른바 '비용질병(cost disease)'이라는 것이다.

과연 서비스업이 어느 정도 낙후됐을까? 서비스업은 속성상 상품에 비해 교역규모가 매우 작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 서비스수지는 무려 130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상품수지 흑자규모의 40%에 달하는 것이다. 소득증가에 따라 서비스에 대한 높은 수요에도 불구하고 국내 서비스시장은 이를 따라주지 못한 데 따른 결과다. 같은 해 서비스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보이는 최대적자국 미국은 660억달러의 서비스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조업과 달리 물적(物的)자본보다는 인적자본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제도적 환경 조성이 따라야 한다. 규제 있는 곳에 비능률이 있고 비능률은 최종수요자에게 높은 비용으로 전가(轉嫁)되게 마련이며 결과적으로 비용질병의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따라서 정부는 제조업을 우선시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서비스에 대한 각종 차별적 규제를 철폐하고 서비스산업에 속한 기업의 시장규율을 높이는 획기적 조치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제도개선이 선행될 때 비로소 서비스시장의 높은 성장잠재력이 시장의 창출로 전환될 수 있으며 기업의 쌓아둔 돈이 국민경제의 선순환으로 작용하는 것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