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駐)태국 상무관을 지낸 한 공무원과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그는 우리가 국민소득이 높다는 우월감을 갖고 태국을 보는 것은 그릇된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싸움을 하면서도 국가운영에 큰 부담을 주지 않고,외교에 능숙하고,남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고,비록 뇌물은 성행해도 대형공사에 부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엄격히 따지는 감독 등이 태국의 잠재력을 가늠케 한다는 것이었다. 값싸게 관광이나 하고 보양식을 먹고 골프를 즐기는 나라가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베트남은 어떤가. 15년간에 걸친 전쟁의 상흔을 씻고 1980년대 중반에 채택한 '도이모이(개혁·개방)'정책은 열린시장의 서곡이었다. 2001년 미국과 관계정상화를 이루고 얼마전 WTO에 가입하면서부터는 외국인 투자가 봇물을 이뤄 세계에서 몇 안되는 매력적인 투자처로 떠올랐다. 특히 빈곤에서 벗어나려는 민·관의 열의는 과거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을 연상할 정도라고 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3대륙의 문명이 만나는 터키도 주목을 받고 있다. 경상수지적자가 누적되고 한때 리라화(貨) 가치의 하락으로 디폴트 직전까지 갔으나 이제는 경제성장에 자신이 붙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치적인 안정이 성장의 견인차가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태국 베트남 터키 이들 3국이 소위 'TVT'라 해서 세계경제의 한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국내외 주요기관의 자료를 토대로 분석한 것으로,아시아의 신흥 3용(龍)인 셈이다. 풍부한 자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젊은 노동력이 강점이라고 한다. 성장엔진이 식어가는 우리와는 대비되는 나라들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국가별로 한 해의 경제성적표를 매기고 신년의 경제성장을 예측한다. 그런데 우리네 사정은 암울하기만 하다. 선진국은 날고,경쟁국은 뛰고,후발국의 추격은 무섭기만 한데 우리는 부질없는 논쟁으로 세월가는 줄 모르고 있다. 어느새 세계 경제의 이방인으로 전락되지나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