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4일 세종로청사에서 법무 행자 농림 등 관계부처 장관들이 배석한 가운데 불법폭력시위에 엄정 대처하겠다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왠지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 아니냐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바로 이틀 전 '참여정부 들어 최대'라고 평가되는 폭력시위가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때문일테다.

물론 이번 담화문엔 폭력시위에 대해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무관용)'란 단어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제로 톨러런스'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관용(프랑스어로 톨레랑스)'에 대비되어 쓰이는 미국식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사소한 규칙위반도 엄하게 다스리겠다는 '엄벌주의'를 뜻하는 말이다.

미국에서 '제로 톨러런스'가 정책으로 추진된 것은 1994년. 뉴욕 경찰국장에 지명된 윌리엄 브래튼이 사소한 범죄도 엄격하게 다스려야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강력하게 추진했고, 정책시행 2년 만에 범죄의 소굴이었던 할렘지역의 범죄율을 40%나 떨어뜨렸을 만큼 효과를 봤다. 정부에서 벤치마킹하겠다고 나선 '제로 톨러런스'는 바로 뉴욕의 그런 정책일 것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시위진압은 제로 톨러런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 22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13개 지역에서 개최된 한·미 FTA 저지 시위과정에서 경찰이 보여준 행동이 대표적 예다. 서울에선 당초 1개 차로만을 사용하기로 한 시위대가 4개 차로까지 점거해 시민들에게 큰 불편을 끼치는데도 경찰은 바라만 봤다. 원칙없는 '관용' 그 자체였다. 대전에서는 촛불집회를 하겠다던 시위대가 촛불 대신 횃불을 들고 도청과 경찰청 담에 불을 지르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학교선생님이 수천명 모여 수업대신 이른바 '연가투쟁'을 벌여도 정부는 관용 또 관용이었다.

'제로 톨러런스'는 굳이 그런 단어가 없더라도 정부가 마땅히 지켜야 할 가이드 라인이다.

그동안 이런 원칙을 지키지 않았던 정부가 이제 와서 그럴 듯한 '조어(造語)정책'을 구사하며 어물쩍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정말 말이 아니라 정책의 내용까지 송두리째 변했으면 좋겠다.

이태훈 사회부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