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를 떠올리면 아직 우리는 '킬링필드'를 연상한다. 1970년대 살인악마로 불렸던 급진 공산정권 크메르루주의 괴수였던 폴 포트는 자국 국민의 3분의 2를 인간개조라는 명분으로 잔혹하게 살해했다. 신현석 주캄보디아 대사는 "내전과 학살,이에 따른 질병과 기아,고등교육의 붕괴를 유산처럼 넘겨받아 출발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캄보디아가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이 곳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을 사기 위해 기울인 노력은 각별했다. 프놈펜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노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의 5m 높이의 대형 사진을 배경으로 2000여명의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성대한 환영행사를 열었다. 공항에서부터 숙소앞까지 10만명에 가까운 환영인파를 도열시켰다. 캄보디아 훈센 총리는 3박4일간의 모든 일정을 비워두고 노 대통령과 자리를 함께 했다.

정부 당국자는 "재건을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을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느껴질 정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작 노 대통령을 환영하는 국빈만찬은 왕궁이 아닌 노 대통령 숙소호텔에서 열렸다. 외교적로는 있을 수 없는 결례였다.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은 아예 기다렸다는 듯이 때맞춰 프랑스로 외유를 떠났다.

시하모니 국왕은 2004년 4월부터 3개월간 북한에 체류했고,1976년에는 북한 영화학교에서 공부를 마쳤다. 그의 아버지인 시하누크 국왕은 1979년부터 91년 베트남 침공당시 아예 중국과 평양에서 망명생활까지 했다. 지금까지 방북횟수만 46회가 넘는다.

시하모니 국왕은 나라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지만,오랜 동맹국 북한에는 '내키지 않는' 노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자신의 '부재(不在)'라는 방법으로 해결한 것이다.

이 결과 캄보디아가 챙긴 한국의 원조약속은 7200만달러에 달한다. 지방행정 정보망 확충사업과 증권거래소 설립 지원,경제개발분야 컨설팅,전력·건설 인프라 확충 등에 쓰일 돈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시하모니 국왕의 부재는 양국 외교당국간 양해가 이뤄진 사항"이라며 "캄보디아로서도 국익과 명분 앞에서 고심끝에 내린 최선의 방안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프놈펜(캄보디아)=이심기 정치부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