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 시절부터 재임 중 한두 차례 청와대에서 대통령 부부를 만났다. 영부인을 대하는 대통령의 태도는 모두 달랐다. 기자들이 손명순 여사에게 질문을 던지자 "우리집 사람은 솥뚜껑 운전사여서 잘 모른다"며 농담처럼 막던 YS와 달리 DJ는 이희호 여사에게 먼저 발언권을 넘기곤 했다.

DJ는 또 결혼기념일에 반지를 선물하고,침실 적정 온도에 대한 느낌이 달라 이 여사에게 맞추고 자신은 담요를 하나 더 덮는다고도 했다. 시절이 변한 걸까. 장인을 둘러싼 비난에도 불구하고 "아내를 사랑한다"고 해서 점수를 땄던 노무현 대통령의 영향인가. 정치인들의 금실 자랑이 한창이다.

"아내 사랑이 건강 비결" "마누라 없으면 시체" 등 표현도 다양하다. 여성표를 어느 정도 의식한 것일 수도 있고,부부 사이가 워낙 각별한 데 따른 자연스런 고백일 수도 있다. 아무튼 실질적인 내조에 상관없이 공개석상에서 부인에 관한 얘기를 털어놓거나 남들 앞에 부인이 나서는 걸 꺼리던 과거와는 여러 모로 달라진 셈이다.

정치인들에게 부인의 몫은 크다고 한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선출직의 경우 부인의 처신과 태도가 당선에 큰 역할을 하는가 하면 낙마의 결정적 요인을 제공하기도 하는 까닭이다. 과거 정치인 부인들은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손님들을 대접하느라 손이 마를 날 없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면서도 부인은 있는 듯 없는 듯 해야 한다고 여겼던 데 비하면 최근 정치인들의 아내 자랑 내지 금실 과시는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러다 보면 남자는 집안 일과 아무 상관도 없고 따라서 자식에 관한 사안조차 자신은 전혀 모르고 모두 부인 탓이라고 둘러대는 일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의식주를 몽땅 부인에게 의존하는 걸 자랑으로 여기는 건 다소 곤란한 것 아닐까. 바쁘니 어쩔 수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지도층 인사들이 바깥 일은 중요하고 집안 일은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하는 한 '결혼과 출산은 선택,직업은 필수'라는 여성들의 사고가 바뀌긴 어려울 것이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