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국민 외면한 약제비 적정화案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조동근 < 명지대 사회과학대학장 >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국민건강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개정안(改正案)을 예고했다. 개정안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란 이름으로 발표됐다. 규칙 개정안은 약제비 절감을 위한 '적정화'로 포장됐지만,실제 내용은 보험공단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보험공단은 보험이 적용되는 약을 '선별등재'(positive list)할 수 있는 권한과 제약사와의 약가(藥價) 협상권을 갖게 된다. 선별등재는 따지고 보면 국민이 먹을 약을 국가가 정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포지티브 리스트'제는 약제비 정책의 지각변동을 불러일으킬 만한 정책변화다. 하지만 규칙개정안의 타당성에 대한 합리적 평가는 실종된 상태다.
사회적 공론화가 실종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한·미 FTA협상과 맞물려 정치 쟁점화됐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약제비 정책은 국내의 고유한 정책이기 때문에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미국을 겨냥한 것처럼 보이지만,포지티브 리스트에 대한 논의를 사실상 봉쇄(封鎖)한 것이다. 그리고 반미 감정은 국민들로 하여금 포지티브 리스트를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켜낸 우리의 '의약 주권'으로 인식하게끔 하였다.
둘째는 '적정화'라는 명분의 선점(先占)을 들 수 있다. 고가약을 지나치게 많이 처방해 약제비를 올려온 의사를 견제하고 신약을 빌미로 폭리(暴利)를 취해온 제약회사를 규제하겠다는 데 반대할 국민은 없다. 그렇다면 '적정화' 방안은 국가권력에 의한 '약자 보호'라는 감성 코드를 건드린 것이다. 이는 약제비 정책이 '포퓰리즘'의 함정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무릇 대중이 반길 만한 것을 조합한 것이 정책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규칙 개정안은 과연 타당(妥當)한가. 먼저 '약제비 비중'이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 총진료비 증가 속도보다 약제비 증가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다. 이는 '비싼 진료 대신 싼 약으로 때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의료 선진국일수록 총진료비 지출이 커 약제비 비중이 낮아지게 된다. 의료 선진국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 우리도 약제비는 증가하되 그 비중은 낮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약제비 비중을 낮추기 위해 포지티브 리스트가 필요하다는 복지부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규칙 개정안은 의료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보험공단이 지정하지 않은 약은 생산되지 않으며,가격이 통제된 약품은 신약개발의 유인이 저하돼 신약 출현이 지체될 것이다. 그만큼 의사의 처방권이 제한되며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도 제약된다. 여러 가지 의약품을 처방받아야 하는 특정 질병의 경우,보험등재 의약품의 제한은 환자의 사(私)부담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약을 복용 못해 의료서비스의 양극화 현상이 초래될 수 있다. 그리고 혁신적 신약 개발 지연은 생명연장과 건강증진의 개인적·사회적 편익을 사장(死藏)시킨다. 한편 어떤 약을 처방할 것인가에 대해 정확한 '현장지식'을 가진 사람은 임상의사일 수밖에 없다. 현장 지식은 환자의 진료 차트와 의사의 뇌리 속에 '사적(私的) 정보'로 존재한다. 따라서 국민이 먹을 약을 골라 주겠다는 것은,임상의사 사이에 사적으로 흩어진 환자 개개인에 대한 현장지식을 보험공단이 모두 모을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복지부가 보험등재와 가격결정권을 갖겠다는 것은,국가가 의약품의 생산,유통,소비를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국가통제를 통해 보험공단의 약제비 지출을 줄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국민의 약제비 부담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포지티브 리스트 시행의 최대 수혜자는 재량권을 극대화한 보건복지부 보험공단 등 정부조직이며,복지부가 그토록 보호하겠다던 국민은 역설적으로 가장 큰 피해자자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이사장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국민건강 요양급여의 기준에 관한 규칙'개정안(改正案)을 예고했다. 개정안은 '약제비 적정화' 방안이란 이름으로 발표됐다. 규칙 개정안은 약제비 절감을 위한 '적정화'로 포장됐지만,실제 내용은 보험공단에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보험공단은 보험이 적용되는 약을 '선별등재'(positive list)할 수 있는 권한과 제약사와의 약가(藥價) 협상권을 갖게 된다. 선별등재는 따지고 보면 국민이 먹을 약을 국가가 정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포지티브 리스트'제는 약제비 정책의 지각변동을 불러일으킬 만한 정책변화다. 하지만 규칙개정안의 타당성에 대한 합리적 평가는 실종된 상태다.
사회적 공론화가 실종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한·미 FTA협상과 맞물려 정치 쟁점화됐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약제비 정책은 국내의 고유한 정책이기 때문에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미국을 겨냥한 것처럼 보이지만,포지티브 리스트에 대한 논의를 사실상 봉쇄(封鎖)한 것이다. 그리고 반미 감정은 국민들로 하여금 포지티브 리스트를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켜낸 우리의 '의약 주권'으로 인식하게끔 하였다.
둘째는 '적정화'라는 명분의 선점(先占)을 들 수 있다. 고가약을 지나치게 많이 처방해 약제비를 올려온 의사를 견제하고 신약을 빌미로 폭리(暴利)를 취해온 제약회사를 규제하겠다는 데 반대할 국민은 없다. 그렇다면 '적정화' 방안은 국가권력에 의한 '약자 보호'라는 감성 코드를 건드린 것이다. 이는 약제비 정책이 '포퓰리즘'의 함정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무릇 대중이 반길 만한 것을 조합한 것이 정책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규칙 개정안은 과연 타당(妥當)한가. 먼저 '약제비 비중'이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 총진료비 증가 속도보다 약제비 증가 속도가 빨랐기 때문이다. 이는 '비싼 진료 대신 싼 약으로 때운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의료 선진국일수록 총진료비 지출이 커 약제비 비중이 낮아지게 된다. 의료 선진국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앞으로 우리도 약제비는 증가하되 그 비중은 낮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따라서 약제비 비중을 낮추기 위해 포지티브 리스트가 필요하다는 복지부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규칙 개정안은 의료소비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보험공단이 지정하지 않은 약은 생산되지 않으며,가격이 통제된 약품은 신약개발의 유인이 저하돼 신약 출현이 지체될 것이다. 그만큼 의사의 처방권이 제한되며 환자의 의약품 접근성도 제약된다. 여러 가지 의약품을 처방받아야 하는 특정 질병의 경우,보험등재 의약품의 제한은 환자의 사(私)부담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약을 복용 못해 의료서비스의 양극화 현상이 초래될 수 있다. 그리고 혁신적 신약 개발 지연은 생명연장과 건강증진의 개인적·사회적 편익을 사장(死藏)시킨다. 한편 어떤 약을 처방할 것인가에 대해 정확한 '현장지식'을 가진 사람은 임상의사일 수밖에 없다. 현장 지식은 환자의 진료 차트와 의사의 뇌리 속에 '사적(私的) 정보'로 존재한다. 따라서 국민이 먹을 약을 골라 주겠다는 것은,임상의사 사이에 사적으로 흩어진 환자 개개인에 대한 현장지식을 보험공단이 모두 모을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복지부가 보험등재와 가격결정권을 갖겠다는 것은,국가가 의약품의 생산,유통,소비를 장악하겠다는 것이다. 국가통제를 통해 보험공단의 약제비 지출을 줄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국민의 약제비 부담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
포지티브 리스트 시행의 최대 수혜자는 재량권을 극대화한 보건복지부 보험공단 등 정부조직이며,복지부가 그토록 보호하겠다던 국민은 역설적으로 가장 큰 피해자자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시장경제제도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