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루아(Terroir).와인을 이해하는 데 가장 기초적인 단어이면서 가장 중요한 단어다.

필자가 마스터 오브 와인(MW·Master of Wine: 최고 권위의 와인 학위) 입학 시험에 응시했을 때의 문제 중 하나가 테루아에 대해 논술하라는 것이었다.

테루아는 다른 언어로는 번역할 만한 단어가 없어 전 세계 어디에서나 같은 말로 불린다.

불어에서 테루아를 직역하자면 토양(Soil)의 의미이겠으나 와인에서는 훨씬 더 복잡한 의미를 지닌다.

옥스퍼드 컴패니언(The Oxford companion)은 테루아를 풀이하면서 '포도 재배지역의 전체 자연적인 환경'이라고 했다.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밭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연적 환경 요소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사람의 손길에 대한 비중이 소홀히 다뤄진 느낌이 있다.

테루아는 크게 물리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도 고려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측면은 간단하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다.

땅에 점토질이 많은지 석회질이 많은지 등에 관한 지질학적 요소부터 땅이 어느 고도에 있는지,온도와 강수량은 어떤지,일조량과 경사도는 얼마나 되는지 등의 지형학적 요소가 물리적인 측면이다.

물 공급과 배수 등 수문학적인 요소와 포도 품종,재배 기술 등도 포함된다.

테루아는 와인의 혈통 즉,원산지(아펠라시옹·appellation)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신대륙과 구대륙의 와인 맛과 스타일이 다른 이유는 근본적으로 이 테루아의 성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테루아의 정신적인 측면은 와인을 만드는 와인 메이커와 포도밭 재배자의 노하우,그리고 그들의 철학을 의미한다.

인간의 영향을 받는 것들이다.

물리적 환경적 조건이 같은 땅이라도 누가 재배하고 양조했느냐에 따라 와인의 개성과 품질은 다르게 마련이다.

포도 품종,접붙이기,토양 관리,재배 방법 등을 달리 선택하면 와인은 차이를 드러낸다.

고유한 개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개성도 개성이지만 와인의 품질도 큰 영향을 미친다.

와인의 맛은 어느 하나만의 요소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조건들이 와인의 맛을 조절한다.

테루아는 그러한 조건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와인을 마신다는 말이 테루아를 느낀다는 말과 크게 차이가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블라인드 테이스팅(Blind Tasting)을 해도 와인의 원산지와 메이커를 찾을 수 있는 까닭은 테루아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테루아라는 단어와 조금 더 친숙해졌기 바란다.

< 그랜드 인터컨티넨탈호텔 소믈리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