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承信 < 한국소비자보호원 원장 Lchung@cpb.or.kr >

지난달 말 국제소비자보호집행기구네트워크(ICPEN) 추계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폴란드를 방문했다. 폴란드 하면 먼저 자유노조의 의장이었던 바웬사가 연상된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폴란드의 초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민주화의 상징으로 기억하고 있다.

정치적 민주화와 아름다운 가을 풍경과는 달리 폴란드의 경제상황은 그리 평탄한 것같지는 않았다. 익어가는 도로의 가로수,멋있게 꾸민 가로등,멀리 보이는 옥색 빛의 호수는 찬란하기 그지없지만,오가는 행인이나 도로 위에 좌판을 깐 상인들의 얼굴은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도착한 다음 날 열린 회의에선 '국경을 넘는 거래에서 발생하는 소비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됐다.

각국은 자기나라의 입장에서 국익을 대표해 문제를 진단하고 대안(代案)을 제시했다. 유럽은 커다란 공동체로서 국경을 넘는 소비자 문제에서도 공조(共助)를 하고 유사한 공통규범에 따라 문제를 처리하기 때문에 소비자 피해가 크게 문제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 호주 캐나다에서는 국경을 넘는 소비자 거래가 매년 급증하고 있고,인터넷 복권과 같은 소비자 피해도 상당히 늘고 있다고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공짜 상술,사기,기만 등의 거래행태가 통하는 모양이다.

국경을 넘는 소비자 거래가 활발해지는 것에 비해 안전장치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우리나라는 이번에 국제소비자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CCDR(Cross-Border Consumer Dispute Resolution) 도입을 제안했다. 이 프로그램은 ICPEN사무국이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사이트를 개설해 각국의 국제 소비자분쟁 사건을 접수한다. 접수된 사건은 사업자 소재국 분쟁조정기관에서 조정 결정해 소비자분쟁이 원만히 해결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제안에 대해 여러 나라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IT 강국으로 앞서가는 우리나라에서 어떤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고,관련 당국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두 진지하게 듣는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달라진 국제적인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ICPEN 등 국제소비자 기구의 활발한 활동으로 회원국의 소비자정책은 과거보다 많이 발전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번에 제안한 CCDR 시스템이 국제 간의 소비자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으로 자리잡아 국경을 넘는 소비자 피해 해결에 일조(一助)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