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무슨 액션영화 선전인줄 알았다. 시내버스 옆구리 광고판에서 '긴장하라!'니. 아니면 취업준비생을 위한 안내서나 학원 홍보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어진 문장이 독특했다. "더 큰 승부는 수요일에 시작된다." 뭔가 다시 봤더니 아래쪽에 '국민체육진흥공단 경정운영본부'라고 쓰여 있었다.

'경정(競艇)' 광고였던 것이다. 몇년 전엔 수많은 버스에 '로또복권' 광고가 붙었었다. 모델로 등장한 유명배우가 '당신도 인생 역전할 수 있다'며 환하게 웃던. 그리곤 한바탕 로또 광풍이 일었다. 시시각각 누적당첨금을 전하는 전광판도 한몫 했지만. 경정에도 그런 바람이 불기를 기대하는 걸까.

경정이란 모터보트 경주에 승자투표권을 팔고 승자를 맞힌 사람에게 배당금을 주는 것. 1952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시작됐다는데 국내엔 91년 12월 제정된 경륜경정법을 바탕으로 2002년 6월부터 시행됐다. 경기일은 매주 수·목요일. 국내의 경정 경기장은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 한 곳. 그러나 12개 장외지점과 인터넷으로도 베팅할 수 있다.

국가가 인정하는 합법적 도박인 셈이다. 경마 경륜 경정 등은 스포츠게임이며 어느 나라에나 있고 수익금은 좋은 일에 쓴다고 말할지 모른다. "집값은 툭하면 몇 천만원도 아니고 억 단위가 오르는데 푼돈으로 목돈 얻는 꿈이라도 못꾸면 어떻게 살라는 거냐"라는 역설적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정 이용자의 57.3%가 월소득 200만원 미만인데 1인당 구매액이 30만원을 넘는다는 걸 보면 그 부작용이 어떨지는 불 보듯 뻔하다. 이런 마당에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되는 버스광고까지 해가며 참여자를 모으는 건 관련분야 육성이라는 목적을 십분 감안하더라도 납득하기 쉽지 않다.

희망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한다. 오늘보다 내일이 나을 것을 믿으면서 참고 노력하는 성실함의 소중함과 그 희망찬 결과를 보장하고 홍보하진 못할망정 도박을 통해 즐거움을 찾으라고 부추기다니. 정말이지 이땅 서민들을 자꾸 하류인생으로 몰아넣을 작정인가 싶어 안타깝고 슬프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