梁奉鎭 < 비상임논설위원 >

외환은행 매각은 과연 헐값이었는가. 그렇지 않다. 이 같은 결론과 평가는 독일계 코메르츠 방크에서 결정적 단서와 열쇠를 찾을 수 있다. 코메르츠는 외환은행이 매각되기 전 32.5%를 소유한 최대주주였다. 외환은행이 헐값으로 매각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코메르츠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넘겨야 했을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재경부나 금감원 공무원들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매각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대한민국 공무원이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코메르츠가 싫다는 데 팔을 비틀어가며 지분을 팔도록 강요했을 수는 없었으리라는 얘기다.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을 조작해 투자자들을 현혹시켰다는 주장은 황당한 얘기다. 코메르츠는 지분소유에 그치지 않고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기 전까지 무려 네 명의 본사 임직원을 외환은행 관리에 투입했다. 이들 중 토암스 나우만은 외환은행의 이사였으며 코메르츠 본사 회계·세무 담당부장이다. 이런 코메르츠가 BIS 숫자놀음에 현혹됐으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며 상대방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다. 우리는 론스타로 야단법석이지만 정작 가장 억울해해야 할 당사자인 코메르츠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는 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흑자부도(黑字不渡)라는 말이 있다. 장부상으로는 분명 흑자인데 회사는 부도가 났다는 얘기다. 믿기 어렵지만 흔히 있는 일이다. 회계에는 감가상각 이연자산 등 회사의 실제 현황과 회계장부 사이에 불일치를 야기하는 요소들이 많다. 이 때문에 주식시장에서 회계정보는 '참고'사항 정도로 취급된다. 회계조차도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지표가 아닌데 하물며 수많은 회계지표 중 하나에 불과한 BIS를 조작해 팔고 사는 양편 모두를 기만했으리라는 상상력은 정말 하품 나오는 얘기다.

외환은행은 론스타에 주당 4245원에 매각됐다. 당시 주식시장에서 외환은행의 종가는 3750원에 거래되고 있었고 그 이전 1개월 평균종가는 3719원이었다. 따라서 외환은행은 실제로 시장가격보다 오히려 15% 내지 20% 이상 비싼 가격으로 매각됐다. 물론 경영권 프리미엄이 고려돼야 하지만 이것을 고려해도 터무니없는 헐값이라고 주장할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론스타가 '먹튀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런 언사야말로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우리의 고질(痼疾)을 대내외에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물론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각할 때 주가는 1만2150원으로 매입시점보다 217% 올랐다. 하지만 같은 기간 다른 은행들도 비슷한 정도로 뛰었다. 우리금융지주가 205% 올랐으며 신한지주 또한 198%가 뛰었다. 따라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사지 않고 다른 은행을 샀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은행들은 일부를 제외하곤 외국인 소유다. 외국인 지분이 대부분 50%가 넘기 때문이다. 따라서 론스타와 달리 규모가 작을 뿐 은행주에 투자한 외국인투자자들은 엄청난 양도차익과 '소리 없는' 먹튀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다만 론스타는 언론에 노출돼 있는 것이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다.

외환은행 매각은 1997년 외환위기의 잔재들을 마무리 정리하는 과정의 하나라고 보아야 한다. 외환위기가 닥치자 김대중 대통령은 "IBM도 한국에 있으면 한국기업"이라는 유명한 화두(話頭)를 던지며 국내기업 해외매각을 독려했다. 당시 아쉬운 쪽은 우리였다. 변소 갈 때 다르고 나와서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우리의 장래 거래들을 위해 바람직하지 못하다.

외환위기가 마무리된 현 시점에서 돌아보면 후회되거나 안타까운 일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이제 역사 속의 교훈으로 묻어야 할 때다. 중요한 것은 요즈음 공무원들의 사기가 땅에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특수한 상황을 무시한 채 현재 시점에서 과거를 단죄하면 그 누구도 소신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는 없다. 그렇지 않아도 복지부동(伏地不動)으로 이 눈치 저 눈치 살피게 된 공무원들의 사기를 더이상 꺾는 것은 그 누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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