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어쩌면 우리도 헤어질 수 있겠구나. 연애라는 게 그런 거니까. 하지만 미리 두려워하지는 않겠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하다. 열심히 케이크를 굽고 열심히 사랑하는 것.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나 김삼순을 더 사랑하는 것!"

지난해 여름,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마지막 대사다. 케이크를 만드느라 손가락 마디가 굵어진,제 능력밖엔 믿거나 기댈 곳 없는 서른살 여성 파티셰의 일과 사랑을 다룬 이 연속극은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대사로 공격도 받았지만 여성들에겐 '삼순이 신드롬'을 일으켰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급증하면서 젊은 직장여성의 삶을 그린 작품이 인기다. 이른바 '칙릿(Chick lit)'이다. 칙릿이란 '아가씨'를 뜻하는 칙(Chick)과 문학(literature)의 줄임말인 릿(lit)을 합친 조어다. '아가씨 문학'이란 말인데 90년대 중반 영국에서 생긴 뒤 미국으로 번져 근래엔 국내를 비롯 전 세계 출판·영상물의 주류로 떴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원조로 꼽히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쇼퍼홀릭''제인 스프링 다이어리''달콤한 나의 도시' 등이 같은 계열로 분류된다. 얼핏 보면 종래의 여성소설과 비슷한 듯하지만 '정글같은 세상에서 제 힘으로 제 인생 걸어가기'를 중심축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주인공은 '일하는 여성'이다. 뭘 몰라서도 안되고 모르는 체 내숭을 떨어서도 곤란하다. 순식간에 경쟁에서 밀려날 테니까. 돈,외모,패션,사회적 성공,성(性)에 대한 욕구를 감출 겨를도 없다. 일과 사랑 모두 누군가 안겨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최선을 다해 쟁취해야 하는 것임을 아는 까닭이다.

'칙릿'붐을 타고 국내에서도 20∼30대 여성을 겨냥한 소설과 처세서 등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칙릿의 본질은 안하무인격 태도나 자유분방한 생활,사치품을 좇는 외모지상주의가 아니라 무한경쟁시대를 이겨내는 건강한 생존법이다. 유행에 편승한 '엉터리 주장'에 혹하지 말고 옥석을 잘 구분하시길!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