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제조업체인 A사는 최근 사소한 실수 때문에 낭패를 당할 뻔했다.

오랜 협상 끝에 러시아 업체에 물품을 대량 납품키로 하고 선적까지 했는데,뒤늦게 계약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통보가 왔기 때문이다.

'계약서에 회사 직인이 없을 경우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러시아 규정을 모르고 당사자 서명만 받은 게 화근이었다.

A사는 KOTRA의 도움으로 물품이 도착하기 전에 회사 직인을 받아 화를 면했지만,당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KOTRA 관계자는 "많은 국내 중소기업들이 러시아 규정을 모른 채 계약서를 작성하다 피해를 입곤 한다"며 "특히 러시아 공공기관은 사소한 실수에 대해서도 정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계약서 작성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이 확대되면서 성공만큼이나 실패 사례도 늘고 있다.

KOTRA는 5일 국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실수와 실패 경험을 우리 기업들이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수 있도록 '우리 기업의 국제협상·계약 실패 사례집'을 발간했다.

70여개 해외 무역관에서 보내온 현장 보고를 토대로 작성된 이 책에는 계약서를 허술하게 작성하다 낭패를 당한 경우에서 대량 주문에 현혹돼 바이어 요구대로 납품가격을 낮추다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본' 업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패 사례가 담겨있다.

베트남에서 고전하고 있는 농기계 생산업체 K사는 현지 시장 사정을 꿰지 못해 된서리를 맞은 케이스다.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현지 유통업체 말만 믿고 판매 에이전트 수를 2개에서 1개로 줄였다가 판로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KOTRA는 "베트남은 아직 시장 규모가 작기 때문에 현지 유통업체와 독점 공급 계약을 맺는 것은 위험하다"며 "아직까지는 복수 에이전트를 통해 판로를 넓히는 게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C사는 영국 비즈니스 환경에 대한 몰이해와 준비 부족이 협상 실패의 원인이 됐다.

이 업체는 '보수적인 영국인의 특성을 감안해 첫 거래 때는 e메일보다 카탈로그를 우편으로 송부하는 게 좋다'는 기본 룰을 몰랐을 뿐 아니라 오·탈자와 잘못된 표현으로 회사의 신뢰를 스스로 깎아먹었다.

D사는 무턱대고 맺은 양해각서(MOU) 때문에 앞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출이 불가능할 정도로 현지에서 이미지가 나빠졌다.

D사는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점을 들어 협상 과정에서 MOU를 파기했지만,MOU를 사실상 최종 계약서처럼 생각하는 현지 업체 입장에선 '약속을 깬 기업'이 된 것이다.

KOTRA 관계자는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며 "현지 시장 상황과 각종 거래 규정 등을 철저히 준비한 뒤 진출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