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起澤 < 중앙대 교수·경제학 >

작년 초부터 상승세를 탔던 우리 경제가 올 1분기부터는 하강추세를 보이고 있다. 1분기에 6.1%였던 경제성장률이 3분기에는 4.6%로 떨어졌다. 여기에 북핵사태까지 터져 향후 경기전망이 더욱 불투명해지자 여당 일각에서는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재정경제부는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에 유보적이다. 올해 5%,내년 4%대로 예상되는 성장률은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팽창적인 거시·재정정책이 필요치 않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현실화되면 새로운 대책을 내놓겠다고 여운을 남기고 있다.

세계경제의 호황을 주도(主導)해왔던 미국경제의 성장률이 주택경기 둔화와 경상수지 악화로 1분기 5.6%,2분기 2.6%에 이어 3분기 1.6%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또 배럴당 50달러 선으로 하락했던 원유가격도 최근 들어 추운 겨울이 예고되면서 다시 60달러 선으로 반등했다. 국내적으로는 소비심리의 냉각이 계속되고 있다. 소비자태도지수는 올해 내내 하락세를 나타내며 기준치인 50을 밑돌고 있다. 4분기에도 북핵사태 등의 영향으로 1.4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 향후 내수회복도 비관적으로 보인다.

경기전망이 이렇게 어두워지면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단기 부양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문제는 별로 없다는 데 있다. 물론 공공부문 건설 지출확대 등 재정지출을 대폭 증대시키면 단기적인 경기활성화와 일자리 창출(創出)이 가능하다. 이것도 부족하면 공중에서 돈을 살포하는 수준으로 복지지출을 늘리면 당장은 소비가 늘어날 것이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개인의 신용카드 사용한도 규제를 철폐한 것이 이런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정책을 되풀이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일회성 경기부양책이 주는 폐해에 대한 학습효과 때문만이 아니다. 5년 전과는 경제환경이 크게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선 당시와 비교해 경상수지가 크게 악화됐다. 올 3분기까지의 경상수지는 누적적자가 8200만달러로 소폭이긴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적자로 돌아섰다. 내년에는 일부 기관에 따르면 40억달러대 수준까지 적자폭이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다.

한편 우리 상품의 경쟁력 약화로 상품수지 흑자폭은 계속 감소하는 반면 해외소비의 급증으로 서비스수지 적자폭은 계속 커지고 있어,경상수지 적자는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40억달러대의 적자는 우리 GDP의 0.5% 정도밖에 안되기 때문에 평상시 같으면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올들어 경상수지(經常收支)뿐만 아니라 자본수지에서도 이상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정부의 규제완화(緩和)에 힘입어 내국인의 해외투자는 크게 증가했지만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인투자는 감소하고 있다. 올들어 지금까지 외국인직접투자 순유입액은 8억달러로 작년의 43억달러에 크게 못 미치고 있으며 외국인의 포트폴리오 투자는 30억달러의 유출초과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 은행들이 해외로부터 단기 차입금을 대폭 늘려 그나마 자본수지 전체 흑자폭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수지구조의 변화로 인해 북핵사태로 야기된 자본시장의 잠재적 불안정성은 더욱 커졌다. 단기차입금의 증대로 급격한 자본이탈 가능성은 더 커지고 경상수지의 적자 반전으로 자본이탈에 대비할 수 있는 완충지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확대재정정책은 수입수요를 증대시켜 경상수지를 악화시킨다. 또한 외환위기 당시의 정책이 그랬듯이 단기부양책은 해외투자자의 우리 경제에 대한 신뢰도 떨어뜨린다. 이는 자본시장,나아가 우리 경제의 불안정성을 확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노사관계의 안정을 도모하고,과감한 규제철폐로 기업투자 환경을 개선하여 국내기업의 해외유출을 막고,해외기업의 직접투자를 늘리는 방안이 최선의 정책이다. 단기 부양책의 남발은 우리 경제를 더 깊은 수렁에 빠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