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 저축의 날이라고? 야,몰랐네."

'저축의 날'을 하루 앞둔 30일.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은행원 3명과 소주 한잔을 기울였다. 회사 얘기,세상 돌아가는 얘기,돈 버는 얘기를 나누다가 화제가 자연스레 저축의 날로 옮겨졌다.

"10여년 전 입행하던 무렵과 비교하면 은행 입장에서건,금융소비자 입장에서건 저축의 의미가 많이 바뀐 게 사실이죠." 신한은행 본점에 근무하는 H팀장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은행 입장에서도 요즘은 저축이 수익성에 별 도움이 안됩니다. 수익증권이나 신용카드 가입을 받는 게 돈이 되죠. 푼돈 몇 푼 들고와 통장 만들어 달라고하는 손님을 은행에서 반가워하지 않는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샐러리맨들의 투자자산 가운데서도 저축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한 시중은행 분당 프라이빗뱅킹(PB) 센터에서 근무 중인 K팀장은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저축을 열심히 하면 부자가 될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는데,요즘 누가 그런 생각을 하느냐"고 말했다. "한 달 만에 집값이 '억'소리 나게 뛰는 세상에서 저축할 맛이 나겠느냐"는 것이다.

제43회 저축의 날 행사가 31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조촐하게' 진행됐다. 상을 받은 저축유공자는 개인과 단체를 포함해 100명으로 역대 최소 규모다. 그나마 이 숫자가 내년에는 두 자리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규모가 작아지면서 행사 장소도 세종문화회관에서 은행회관 국제회의실로 옮겨졌다. 작년까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수여하던 훈포장도 올해는 재경부 차관이 대신 줬다. 1970년대 대규모 군악대가 동원돼 대통령이 직접 수여하던 때와는 많이 달라진 풍경이다.

물론 더 이상 근검 절약이 미덕으로만 간주될 수 없는 세상이다. 갈수록 쪼그라드는 저축의 날 행사 규모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K팀장의 얘기처럼 '쥐꼬리만한 월급이라도 아껴서 저축하면,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은 안타깝다.

송종현 경제부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