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직장인 김교한씨(가명)는 지난 2~3주가 악몽같다.

집값이 계속 올라 더 늦기 전에 중소형아파트라도 사려고 발이 부르트도록 수도권 일대를 돌아다녔지만,가는 곳마다 "매물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기 때문이다.

김씨가 확보한 돈은 전세자금 1억원과 예금 2000만원 등 모두 1억2000만원.그는 여기에 은행 대출을 얻어 2억2000만원 안팎의 집을 구하러 다녔다.

내집마련을 위한 김씨의 '현장 답사'는 서울 강북지역에서 출발해 경기 남부인 용인·수원·화성을 거쳐 북부지역인 일산·김포까지 이어졌다.

그는 어렵사리 2억2000만원짜리 아파트를 구했지만 "1000가구가 넘는 대단지에서도 매물이 1~2개밖에 안되는 곳이 허다했다"면서 "가격도 턱없이 올라 속만 새까맣게 탔다"며 하소연했다.

23일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서울과 수도권에서 중·소형 아파트 매물이 씨가 마르고 있다.

특히 20평형대 아파트는 용인 평촌 산본 수원 화성 등 수도권 남부뿐만 아니라 김포 파주 일산 등 북부에 이르기까지 매물을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내년 2주택자의 양도세 중과조치를 앞두고 연말 매물이 쏟아질 것이라던 정부 전망과 달리 김씨의 예에서 보듯 1000가구 이상 대단지에서도 매물이 1~2개에 불과한 곳이 수두룩할 정도로 아파트 품귀 현상이 심각하다.

이에 따라 집값도 계속 급등해 실수요자인 서민과 신혼부부들의 상실감이 커지고 있다.

중·소형 아파트의 이 같은 '이상' 매물부족 현상은 전세 수요가 대거 매입 수요로 전환됐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연말 집값이 하락할 것이란 정부 예상과 달리 전세난이 가중된 데다 집값마저 계속 오를 조짐을 보이자 서민들이 더 늦다간 내집마련 꿈을 아예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한꺼번에 매수세로 돌아서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수도권 남부

수도권 남부인 경기 군포시 산본신도시의 경우 24평형 주공아파트는 968가구나 되지만 매물이 1주일째 나오지 않고 있다.

26평형 역시 659가구 중 매물은 단 두 채뿐이다.

인근 K공인 관계자는 "추석 직후 급매물 위주로 5~6건의 계약을 체결한 이후에는 매물이 뚝 끊겼다"면서 "10여년간 중개업에 종사하면서 지금처럼 매물이 귀한 적은 처음"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매물이 워낙 없다보니 계약서를 쓰는 과정에서 가격이 1000만~2000만원 오르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는 게 중개업소들의 전언이다.

안양 평촌신도시 초원대림 아파트단지도 1000가구가 넘지만 실제 거래할 수 있는 매물은 2~3개에 불과하다.

이진부동산 관계자는 "가뜩이나 공급이 딸리는 상황에서 리모델링 추진 얘기까지 흘러나와 20평형대의 경우 매물이 모두 회수된 상태"라고 전했다.

수원 율전·천천·조원동이나 화성 반월·병점·기산·봉담동 일대 아파트 역시 중·소형 매물이 빠르게 소진되면서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수도권 북부

경기 북부에서도 일산·파주·김포 등 신도시를 중심으로 중·소형 평형의 매물이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일산 백석동 백송대림·백송두산·선경코오롱 등의 20평형대 아파트값은 추석 직후 3000만~4000만원씩 뛰었다.

백석동 한빛부동산 관계자는 "일산 내에서는 물론 서울 강북권 거주자들도 아파트를 사러 오지만 1억~2억원으로 매입할 수 있는 20평형대 아파트는 거의 없다"고 전했다.

고양시 행신동 수정부동산의 이철주 사장은 "매물이 워낙 없어 비수기인 겨울이 오기 전까지 가격이 계속 뛸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파주 금촌동의 P공인 관계자는 "판교 당첨자 발표 후 아파트값 상승세에 불이 붙었다"면서 "매물이 있느냐는 문의 전화가 하루에 수십통씩 쏟아진다"고 말했다.

김포지역의 경우 풍무·장기·사우·북변·감정동 등 거의 전 지역이 개발 기대감에 들뜨면서 매물이 더욱 부족한 상황이다.

○매물 왜 씨마르나

중·소형 아파트의 품귀는 그동안 정부 말만 믿고 집값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온 서민들이 집값이 오히려 급등할 조짐을 보이자 "더 늦으면 집을 구하지 못한다"는 조급함에 일제히 매수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사장은 "서민들이 전셋집 잡기도 어렵게 되자,아예 대출을 끼고 20평형대라도 사려는 분위기"라며 "주택이 워낙 부족하기 때문에 가격 상승세가 쉽게 꺾이기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전문가는 "정부가 공급확대는 게을리한 채 수요억제에만 초점을 맞춘 주택정책을 편 결과 집값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정부 주택정책의 총체적인 실패에 따른 부담을 서민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조재길·박종서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