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가을로'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여행엔 치유의 힘이 있다. 사막에서 시작하는 이 여행이 숲에서 끝나듯 우리 삶도 그렇게 되기를." 영화는 삼풍백화점 사고 이후 삭막한 가슴을 안고 살아가던 두 사람이 여행을 통해 사랑과 생의 의욕을 되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부산영화제(PIFF)의 역사 또한 사막에서 시작해 숲으로 이어진 여정(旅程)과 같다. PIFF는 1996년 첫발을 내디딘 뒤 11년 만에 아시아 최고를 넘어 세계적 영화제로 도약했다. 국제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가 영화계 소식지를 매일 발간하고,세계 유명영화제 위원장 및 감독 배우 바이어들이 앞다퉈 찾는다.

우리 영화의 연이은 해외 영화제 수상 및 진출이 우연한 현상이 아닌 셈이다. PIFF는 또 부산 시민과 영화계 전체를 아우르는 축제로 자리잡았다. 올해 개막식엔 특히 엄앵란 안성기 감우성 이병헌 엄정화 정우성 김지수 김태희 이준기 문근영씨 등 원로에서 신인까지 모두 참석,'스타들의 참가가 부진하다'던 기존 인식을 깨뜨렸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해운대에 CGV 프리머스 메가박스 등 복합상영관이 늘어나 해운대에 묵는 사람들이 남포동까지 가는 수고를 덜었다. 영화제의 힘은 기업의 마케팅 강화에서도 두드러진다. 기아자동차는 의전용 차량을 제공했고,CGV 캐논 쌈지 등 협찬업체들은 바닷가에 부스를 마련했다.

의류 및 주류 업체는 영화 홍보용 종이백,음료와 샴푸 등 생활용품 제조사들은 신제품 샘플을 나눠준다. 축제가 어떻게 산업을 창출하고 지역을 활성화시키는지 입증하는 셈이다. PIFF의 또 한가지 특징은 정치색 배제다. 올해 역시 허남식 시장의 개막식 선언 외엔 누구의 축사도 없이 개막됐다.

부산영화제는 김동호 위원장의 사심없는 열정과 이를 믿고 지지한 부산시 당국자 및 후원자들의 힘이 모아진 결과다. 올해 참가작 245편 중 64편이 세계 첫 개봉작이다. 가슴이 답답하고 사는 게 버겁다면 지금 당장 부산에 가서 영화도 보고 해변도 달려보시라. 사막같던 세상이 숲처럼 느껴질지 모를 테니.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