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쇠고 온 지 한 주일이 지났건만 그 뒷얘기는 바로 오늘 아침에 겪고 온 얘기처럼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명절날 부엌일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도 있고 같은 집안에서 남녀간의 차별로 겪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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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얘기 대부분이 그 일과 관계없는 사람이 들으면 별일이다 싶지만 본인한테는 여간 속 터지는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시집의 '시'자가 싫어 시금치까지 보기 싫어졌다는 며느리의 얘기까지 나오겠는가. 우리집일 수도 있고,또 다른 집일 수도 있고,우리 모두의 집일 수도 있는 어느 집 추석날 아침 풍경을 얘기하면 이렇다.

서울에 살고 여러 형제를 둔 그야말로 '다복한 집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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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둘에 딸 둘을 두었으니,그리고 그 아들딸들이 모두 제앞 닦음을 하고 사니 남들이 봐도 부러운 집안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명절날만 되면 어느 집안보다 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이번 추석이라고 예외였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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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차례를 지낸 다음 점심때가 가까워지자 그 집 어머니는 안절부절못하며 시집간 두 딸을 기다린다.

다행히 딸들의 시댁도 서울이다.

큰딸은 방금 전에 사위와 함께 도착했는데,작은딸은 아직 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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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기다리다 못해 딸에게 전화를 건다.

큰딸이 처음 시집갔을 때만 해도 사돈집에 전화를 걸기가 어려웠으나 지금은 저마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으니 그건 크게 눈치 볼 일도 아니고 어려운 일도 아니다.

전화를 하니 작은딸은 누가 들을세라 작은 목소리로 아직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차례를 아직 안 지냈느냐,지냈는데 왜 못 떠나느냐고 묻는다.

딸은 거듭 작은 목소리로 "보내줘야 떠나지" 하고,저쪽에 부려야 할 짜증을 친정어머니에게 부린다.

이어지는 대화를 더 받아 적으면 이렇다.

"왜 안 보내 주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급기야 어머니도 짜증을 내고 딸도 답답한 마음에 집 바깥으로 나와 있는 짜증 없는 짜증 다 부린다.

같은 서울 안에서도 한 시간 걸리는 거리다.

전화를 끊고 딸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투덜투덜 사돈 불평을 한다.

차례를 지냈으면 얼른얼른 아이들을 보내줄 것이지 무얼 하느라 여태 붙잡고 있는지 모르겠다고,가슴속에 든 말을 그대로 내뱉는다.

그때 이 집의 아들 하나가 나서서 어머니에게 일부러 더 싱긋싱긋 웃으며 말한다.

"어머니,그렇게 말할 게 어디 있겠어요?" "왜 못해? 너는 지금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다는 거냐?" "아뇨.틀린 말이야 아니지요.

그렇지만 지금 이 집도 아침 차례를 지낸 다음 친정에 들러야 할 며느리를 둘 다 그대로 붙잡고 있잖아요?"

그 말에 어머니는 쌩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누가 안 보내준다니? 얘들은 걔들이 오는 거 보고 가야지.걔들이 오면 상은 누가 차리란 말이냐?" 그러자 아들도 이때만은 어머니 약을 올리기로 작정을 한 듯 다시 빙글거리며 말한다.

"그러게 말이지요.

아마 그 집도 지금 이 집처럼 자기집 딸이 오면 상을 차릴 사람이 없어서 남의 집 딸을 붙잡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요."

오후 늦게 딸도 간신히 친정에 와서는 잠시 전 시댁에서의 상황을 잊고 이렇게 말한다.

"어,그런데 이 집 며느리들 다 어디 갔어?" 친정에만 오면 잠시 전 며느리였던 처지를 잊고 금방 예전의 시누이가 되는 것이다.

어른들도 명절날 시집간 내 딸은 얼른 친정에 다니러 오길 바라고,자기집 며느리는 그런 자기 딸이 올 때까지 부득부득 붙잡고 싶어 한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라는 것은 언제나 이런 식이다.

버선 속을 뒤집듯 이렇게 뒤집으면 내 처지와 남의 처지가 바로 보인다.

단지 명절날 어느 집안의 작은 소동을 예로 든 것 뿐이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관계와 처지가 그렇다.

그런데도 내가 조금 더 유리한 입장에 있거나 실권을 가진 입장에 있게 되면 그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이치를 외면하는 것이다.

꽉 막힌 사거리의 교차로에서만 차량이 얽혀 있고 순서가 얽혀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 사는 세상이 온통 이런 식으로 내 자리와 남의 자리가 얽혀 있는 것이다.

버선 속보다 쉽게 들여다보이는 것을 외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