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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칼럼] 또 하나의 포퓰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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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趙東根 < 명지대 사회과학대학장·경제학 >

    은평 뉴타운 아파트 고분양가 논란으로 불거진 분양원가 공개 문제가 민간업체까지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그동안 원가 공개에 반대해온 노무현 대통령은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믿고 있고 또 시민사회에서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원가공개가 불가피하다"면서 자신의 입장을 바꾸었다.

    소비자의 알 권리 충족과 주택 건설업체의 폭리 근절을 위해 원가 공개가 불가피하다는 시민단체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원가공개 요구는 가격결정 원리에 대한 몰이해를 반영한 것이다.

    원가에 이윤을 더해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면 망하는 기업은 없다.

    가격은 소비자가 재화 소비로부터 얻는 만족,즉 지불하고자 하는 최대 금액 '이하'에서 결정된다.

    예컨대 이미자 디너쇼 입장료를 원가로는 설명할 수 없다.

    시민단체의 원가공개 요구는 분양가 규제가 목적이다.

    그러나 신규 분양되는 주택은 기존의 주택에 비해 물량이 적기 때문에,분양가를 의도적(意圖的)으로 낮춰도 기존 주택의 가격이 낮아지지 않는다.

    주택업자가 미분양을 의도하지 않는 한,분양가는 기존 주택가격을 기준으로 역산(逆算)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분양가 규제는 로또복권 당첨자를 양산할 뿐이다.

    원가가 공개되면 '분양가심의위원회' 같은 기구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때 얼마를 적정 이윤으로 볼 것인지 합의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신규 공급되는 주택에 대한 수요가 충분한 경우 분양가 심의는 그 나름의 의미를 갖겠지만,그렇지 않은 경우 건설업체의 손실분을 메워줄 것이 아니라면,원가 공개는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분양가는 주택업자가 시장을 설득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사업장의 리스크를 고려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일이다.

    따라서 심의기구 발상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다.

    원가 공개는 소비자의 알 권리와 무관하다.

    경제이론에 의하면 수요자는 공급자의 비용조건에 대해 관심을 둘 이유가 없다.

    기존 주택을 매매할 때,팔려는 사람이 그 주택을 과거에 얼마 주고 샀는지 구매자는 관심이 없다.

    자신이 사려는 주택의 현재와 미래의 자산가치를 평가하고 구입 여부를 결정하면 그뿐이다.

    신규 주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원가는 공급자의 사정일 뿐이다.

    최근 일부 지역의 주택가격이 천정부지로 뛴 것은 원가 공개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재건축 규제 등 각종 규제로 주택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섣부른 원가 공개로 분양가를 낮추면,주택공급이 감소해 오히려 주택가격을 더 끌어올릴 수도 있다.

    분양원가 공개와 후(後)분양제는 짝을 이룬다.

    후분양제로 전환하면 입주자 부담이 경감되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先)분양은 미래에 인도될 주택 가격을 지금 정한 것이기 때문에 일종의 '선물거래'이다.

    따라서 주택가격 상승이 예상되는 경우 선분양은 소비자에게 유리하다.

    미래의 현물가격과 선물가격 차이만큼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입주 시점에 분양가만큼 프리미엄이 붙은 주택들이 그런 경우이다.

    반면에 주택가격 상승이 예상될 때 후분양은 소비자에게 불리하다.

    주택업자가 시세 상승분을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선분양이 일반화된 것은,주택가격이 오르는 추세에서 주택을 사려는 쪽이 선분양을 용인했기 때문이다.

    만일 후분양했다면 건설업체는 이자비용을 제하고도 더 많은 차익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선분양인가 후분양인가는 주택가격 결정과 무관하다.

    정책입안자에게 "국민이 원하기 때문에"라는 것 만큼 정책을 구사하기 편한 상황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포퓰리즘 만큼 대중을 곤경에 빠지게 하는 것도 없다.

    평범한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 하지만 지도자라면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봐야 한다는 '로마 이야기'에 나오는 경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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