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은 망자(亡者)가 저승에서의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을 살 수 있도록 장례식 때 종이 돈을 태운다.최근에는 종이로 만든 핸드폰,노트북,평면 TV까지 함께 태운다.한 인도네시아 여성은 컴퓨터를 건드리지도 않으면서 자신을 인터넷 사용자라고 생각한다.자녀에게 이메일 메시지를 불러주면 그 자녀는 사이버 카페에 내용을 입력한뒤 답장을 프린트해 어머니에게 읽어주는 식이다.이러한 일화들에서 볼 수 있듯 사람들이 기술을 보는 시각과 이용하는 방식은 문화와 대륙에 따라 매우 다르다.신제품을 기획,개발하는 단계에서 경제 경영 인류 심리 종교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엔지니어들과 함께하는 것이 글로벌기업의 추세로 자리잡는 이유다.제품에 다양한 인류의 경험을 담아야 글로벌 브랜드로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1 보잉, 노인체험복을 입어라

미국 시애틀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에버럿의 보잉 ‘페이로즈 컨셉트 센터’(PCC;Payloads Concept Center).이 곳 로비를 들어서면 용도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요상한 복장을 한 마네킹 하나가 서 있다.
‘항공기를 만드는 회사의 디자인센터,그것도 방문객을 맞는 로비에 마네킹이라니….’

“무릎 팔꿈치 팔목 허리 부분에 부목을 덧대 움직이기 불편하도록 만든 특수한 옷입니다.노인들이 기내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디자이너들이 입고 테스트 합니다.”(케빈 질크 디자이너) 각종 기내 시설물을 제작할 때 승객들의 편의성을 체크하는 수단인 ‘Ageing Suit’(노인체험복)는 경험을 통해 디자인을 만들어 가는 PCC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기내 인테리어가 항공기 선택의 한 변수로 떠오른 이후 PCC 소속 디자이너들은 철저하게 승객 눈높이에서 생각하고 아이디어를 내는데 힘을 쏟고 있다.때문에 미술 산업디자인은 물론 심리학 전공자들도 이곳에서 작업을 함께한다.케네스머서 국제판매담당 매니저는 “디즈니랜드에 가면 편안하고 즐겁고 환상 속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누구나 받는다”면서 “승객들이 비행기 안에서 비슷한 기분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고 말했다.

#2 인텔, 일상적 삶을 탐구하라

사회학자와 인류학자,엔지니어 등으로 구성된 인텔의 PPR(People and Practices Research) 팀은 세계 각지로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에 속한 사람들의 삶과 노동의 방식을 탐구한다.그들은 심층 인터뷰에서부터 스토리 구성,각종 활동에의 참여 등을 통해 현지 조사를 수행한다.PPR 팀은 국제 시장을 겨냥한 제품 기획을 지원하면서 현지조사를 통해 수집된 분석을 인텔의 사업부,상품개발그룹,전략가들과 공유한다.

전통적인 시장 조사 기법은 트렌드를 결정하고 사람들의 현재 행위를 보여줄 뿐이지만 PPR팀의 사회과학자들과 기획자들은 인류의 가치,열망과 욕구,그리고 동기를 보다 깊이 파헤쳐 나간다.이렇게 구성된 구체적인 지식은 향후 사람들이 구매하고 이용할 제품을 디자인하는데 필수적인 것이 된다.PPR 팀의 최근 프로젝트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일상적인 삶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벨(Genevieve Bell)박사가 이끄는 IAP(Inside Asia Project) 팀은 2년간 아시아 7개국(인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한국 중국 호주)의 100여 가정에서 조사를 수행해 왔다.중국 소비자들을 겨냥한 ‘(CHL)China Home Learning PC’와 ‘iCafe platform’도 이곳 작품이다.

#3 LG전자, 홍대앞서 베버리힐스까지

1989년 설립된 LSR(Life Soft Research)는 고객을 연구하는 사내 ‘씽크탱크’.이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제품 컨셉트,중장기적으로는 향후 10년간 회사를 먹여 살릴 제품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때문에 44명에 달하는 연구원들의 전공도 경영 경제 심리 사회 디자인 등 다양하다.활동 반경도 넓다.서울 홍대앞과 강남 나이트클럽에서 부터 미국 로스앤젤레스까지다.이철배 LSR연구소장은 “수없이 아이디어를 쏟아내도 실제 제품에 반영되는 것은 10%도 되지 않는다”며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고객을 관찰하고 문화를 읽어내면 답이 나오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LSR연구소는 지난해와 올해 생방송 중에 화면을 멈춰 다시 볼 수 있는 타임머신 TV와 마치 DJ가 턴테이블을 돌리며 스크래치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아카펠라 뮤직폰 등에 대한 기본 컨셉트를 내놓아 관련 제품을 히트상품의 반열에 올려 놓는데 공을 세웠다.덕분에 각 사업본부장(사장)들이 LSR연구소에 큰 경영방향을 제시하고 자문을 요청하는 사례도 부쩍 늘고 있다.

하영춘 뉴욕특파원·류시훈기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