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2년 7%대를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은 2003년 3.1%로 급전직하했다가 2004년에 4.7%로 살아나는 듯 보였지만,지난해 다시 4.1%로 주저앉았다.

문제는 가라앉은 경기가 여전히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내년에 연4.6%대의 성장률을 기준으로 예산안을 편성했던 정부는 4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내년도 경제성장 전망치에대한 리밸런싱(재조정)을 언급하고 나섰다.

여기에 최근 들어 북한의 핵실험이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한국경제호(號)의 앞날에 암운이 드리워진 상황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경기부진을 타파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기업,특히 대기업의 투자를 되살리는 게 다른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수도권 규제완화,출자총액제도 폐지 등 대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중소기업들의 투자도 뒤따르는 선순환 고리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발목잡힌 대기업 투자

금융연구원 하준경 연구위원은 "최근 들어 우리나라 대기업의 설비투자 성향이 높아지고 있으나 아직 외환위기 이전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라며 "순투자 개념으로 측정한 대기업 설비투자 성향은 상장 중소기업에 비해서도 낮다"고 지적했다.

하 연구위원은 "대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 성향도 전반적으로 증가추세에 있지만,그 수준은 상장 중소기업에 비해서 낮을 뿐만 아니라 경쟁관계에 있는 글로벌 대기업들에 비해서도 빈약하다"고 강조했다.

영국 통상산업부의 'R&D 스코어보드'에 나와 있는 세계 1000대 R&D기업에 우리나라 기업은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11개 기업만이 포함돼 대만의 22개에 비해서도 크게 부족하다는 것.

대기업들이 이처럼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무엇보다 정부의 각종 규제가 꼽힌다.


◆어떤 규제 풀어야 하나

국내 대기업들이 그동안 정부에 꾸준하게 요구해 온 대표적인 규제완화책으로는 △대기업의 수도권 공장설립 규제 완화 △조건 없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적대적 인수합병(M&A)대응책 강구 △이중대표 소송제 도입방침 재검토 등이 꼽힌다.

실제로 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경기하락을 방어하기 위해 가장 시급히 개선해야 할 규제를 묻는 질문에는 대기업은 '출총제 등 기업지배구조 관련 규제'를 꼽았으며 이어 '건설·부동산 규제'(27.0%),'노동 관련 규제'(14.0%),'신사업 진입 규제'(7.0%) 등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결국 해법은 대기업 투자 활성화

정부 역시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대기업에 대한 규제완화에 적극적으로 나설 뜻을 피력하는 등 변화된 기운도 감지되고 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의 이른바 '뉴딜론'으로부터 점화된 정부의 친기업 분위기는 지난 9월28일 권오규 경제부총리의 '첫작품'인 기업환경개선 종합대책이 발표되면서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모습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5단체 역시 정부의 대기업 투자진작에 의한 경기살리기를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위해서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당장 9·28 기업환경개선 종합대책만 놓고 보더라도 재계가 그동안 꾸준히 요구해온 대기업의 수도권 공장설립규제와 관련해선 '균형발전 원칙에 입각한 선별적 검토' 방침을 재확인함으로써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송종현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