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베트남 호찌민시.탄손누트 공항에 내리자마자 습하고 더운 기운이 확 밀려왔다.

하루에도 두세 차례 내린다는 '므어'(비)가 한바탕 지나간 탓이리라.공항 검색대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낯익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가수 비를 모델로 내세운 대원 칸타빌 아파트 광고였다.

시내로 들어가자 거리 곳곳에서 LG,삼성 등의 대형 광고판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기아자동차 프라이드를 운전하는 택시기사는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메이드 인 코리아 넘버원"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한국 기업의 베트남 투자액은 22억6000만달러.작년보다 21% 늘었다고 한다.

한국인 투자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현지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지만, 이곳에 진출한 일부 기업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부작용도 심각하다고 한다.

막연한 기대감만 갖고 베트남을 찾는 '묻지마 투자'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호찌민시에서 15년간 무역업을 하고 있는 한 기업인은 "최근에는 어떤 업종에 투자할지 정하지도 않은 채 무조건 베트남행 비행기에 오르는 한국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심지어 공항에서 처음 만난 현지가이드가 추천한 분야에 무작정 뛰어들었다 실패한 사례도 봤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기업 관계자는 "중소업체의 경우 이곳 국영기업과 합작형태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지 법률 지식이 모자라 나중에 돈을 떼이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털어놨다.

코트라 관계자 역시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는 "1억~2억원 정도 들고 목표도 정하지 않은 채 오는 한국 사람들이 늘고 있다"면서 "최근 투자환경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아직까지 이곳은 공산국가이고 외국인이 기업을 운영하는데 제약이 많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베트남 경제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중간단계쯤에 위치해 있어 긴장을 늦춰선 안된다는 게 현지 진출 기업인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하루가 다르게 외국인 투자가 늘고 있지만 제도나 법률 등의 시스템보다는 공무원과의 친분이나 뇌물 등에 의존하는 관행은 여전하다는 것.철저한 시장 조사와 사전 준비 과정은 '기회의 땅' 베트남이라고 예외는 아닌 것 같다.

호찌민=이태훈 사회부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