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이 26일 오전 각의에서 총 사퇴한다.

고이즈미 총리는 자신의 개혁노선을 이어받을 후계자로 키워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총재에게 정권을 물려준다.

지난 2001년 4월 내각을 발족한 고이즈미 총리의 재임 일수는 1천980일로,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의 2천798일,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의 2천616일에 이어 전후 3번째 장수 정권으로 기록된다.

또 자민당 총재로서 임기를 다 채우고 물러나기는 1991년 11월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전 총리이후 처음이다.

'개혁'을 화두로 내걸고 출범한 '고이즈미 내각'의 재임기간 지지율은 평균 50%대를 유지했다.

일본 경제를 '잃어버린 10년'의 장기불황에서 벗어나도록 했으며, 집권 자민당의 '파벌정치'를 무장해제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취임후 한차례도 거르지않은 그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는 한국, 중국과의 정상외교를 단절시키는 등 대(對)아시아 외교를 최악의 상황으로 빠뜨렸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또 개혁이라는 이름하에 단행한 각종 정책은 '격차 사회'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을 만큼 일본 사회를 양극화로 몰아갔다.

고이즈미 총리는 작년 8월 개혁의 상징이나 다름없던 '우정민영화 법안'이 부결되자 중의원을 '자폭 해산'했다.

'고이즈미 극장정치'를 연출하며 중의원 선거를 대승으로 이끌어 강력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그러나 자신의 개혁 노선에 반대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단죄하는 '비정함'도 서슴지않았다.

법안에 반대했던 의원들을 당에서 몰아낸데 그치지않고 정계에 다시 발을 못붙이도록 그들의 선거구에 이른바 '자객'을 투입, 낙선토록 해 '냉혈한'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외교면에서도 철저하게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중시하면서 아시아 외교는 경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정책, 대 이라크 정책에 대한 해외의 최대 원군으로서 각종 지원을 아끼지않았다.

그런 덕분에 지난 7월 마지막 미국 방문시에는 부시 대통령과 함께 전용기를 타고 '전설적인 로큰롤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의 저택을 방문했을 정도로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최대의 환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웃인 한국과 중국 정부가 관계 개선을 위해 야스쿠니 참배 자제를 간청했으나 듣지않았다.

지난 8월15일 '종전기념일'에는 연미복을 차려입은 모습으로 TV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보란듯이 참배를 강행, 한.중 양국의 강한 반발을 샀다.

'고이즈미 정권'의 명암은 26일 오후 국회의 지명선거와 국왕의 임명식을 거쳐 발족하는 아베 내각에 고스란히 물려지게 됐다.

아베 차기 총리는 고이즈미 총리가 관방 부장관, 간사장, 간사장 대리에 이어 내각 2인자인 관방장관에 차례로 기용, 후계자 수업을 시켜온 인물. 9-10선이 즐비한 일본 정계에서 '풋내기'에 불과한 아베를 요직에 발탁해 자신의 개혁 노선을 이어받도록 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퇴임 하루전인 25일 관저 출입 기자단과의 마지막 회견에서 지난 5년 5개월의 재임 기간에 추진해온 구조 개혁에 대해 "논쟁을 통해 개혁없이는 성장이 없다는 결론을 냈다"는 말로 정리했다.

또 자신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로 비롯된 한.중 양국과의 관계 경색에 대해서도 "후회는 없다.

중국, 한국과의 관계도 이런 시기가 필요하다.

훗날 평가받을 것으로 본다"며 한.중 양국의 탓으로 돌리는 기존 입장에서 물러서지않았다.

(도쿄연합뉴스) 이홍기 특파원 lhk@yna.co.kr